강춘성 박사(38)는 명동 한복판에 ‘강춘성 성형외과’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업’을 하는 전문의다. 그러나 강박사는 많은 성형외과 의사들처럼 ‘손쉬운 시술로 큰 돈을 버는’것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힌 조금은 ‘별난’의사다. 한 신문사 중견가부를 통해 “사회의 민주화와 언론민주화를 위해 애쓰다가 본래의 몸상태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돕고싶다”는 어찌보면 엉뚱한 생각을 전해온 사람이다.

그의 이같은 생각은 개인의 독특한 철학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젊은날의 현시점에서 풀어나기기 위한 사회적 실천의 성격이 짙은 것 같다.

“어려운 시기, 암울한 시기에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하고 방관자적인 위치에서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선 당시의 내 모습이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강박사의 고백이다. 유신말기인 79년에 대학에 들어간 강박사는 고향인 전주에서 12·12와 5·18을 모두 지켜봐야 했다. 자신도 시위에 ‘단순가담’했다는 이유로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몇번 지기도 했다.

그러나 강박사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생각은 “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피땀을 흘린 분들게 항상 미안한 생각이 크다”는 일종의 ‘원죄의식’같은 거다. 그래서 이들의 상처난 얼굴과 손발에 새겨진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속 생각이다.

얼굴이나 몸이 화상 등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거나 손가락 발가락이 절단된 사람들을 상대로 재건이 가능하다면 어떤 경우를 가리지 않고 치료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이 “민주화 투쟁을 못한 것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의사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가 언론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올해초 ‘재경언론사 축구연합회’주치의로 활동하면서부터, 그는 벌써 알게 모르게 한 신문사의 발송부서와 윤전부서에서 일하다 손 등을 다친 몇사람을 치료하고 있다.

“진료비를 전액 무료로 할지 아니면 기초적인 약품과 시술기구를 공개하고 이 비용만을 도움 받을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강박사는 생각 같아선 전액 무료로 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가 조금은 걱정된다고 한다. “사실 성형외과는 전체치료비의 70% 이상이 의사의 수공비”라며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진료가 가능할 것이라는 게 강박사의 생각이다.

돈이 안되고 힘들면 나중엔 짜증이 날수도 있을 것 아니냐는 우려에 “아내도 소아과 의삽니다. 무슨 큰 걱정 있겠어요”라며 강박사는 씨익 웃는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원할 경우 대학 동기들 가운데 이미 ‘구워 삶아 놓은’전문의들과 함께 치료를 해나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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