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학살자 차단’을 요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우리 방송들은 때아닌 ‘월드컵 타령’에 몰입해 있다.
가령 지난 9월29일 금요일 KBS와 MBC의 9시 뉴스는 월드컵 유치 선정소식을 톱뉴스로 전했다.

KBS는 월드컵 유치 신청을 낸 소식을 필두로 월드컵을 유치 했을 때 순수익이 2천억원을 넘는다는 한국개발원의 분석과 월드컵 유치 가능성이 높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달고 있다.

이어 보도된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정상회담도 월드컵 유치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다 우리나라 축구팀과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 축구팀의 경기전망보도를 13번째로 덧붙였다.

MBC도 월드컵 유치신청 소식과 한국과 일본의 경쟁 소식 그리고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정상회담 소식을 차례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5·18특별법 제정과 관련된 뉴스의 보도 양태는 월드컵과 사뭇 다르다. 양 방송사가 일제히 월드컵 유치 신청을 톱으로 보도한 이 날은 전국의 백여개 대학이 동맹휴업에 들어간 날이 있다.이날 서울에서 2만여명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시가지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도 5·18관련 기사를 KBS는 8번째 리포트로, MBC는 7번째 리포트로 처리했을 뿐이다. KBS는 여기다 대학생들의 시위로 서울 도심이 교통 불편을 겪었다는 보도를 ‘착실히’덧붙였다. 월드컵 유치를 온통 장밋빛으로만 보는 방송의 눈에 5·18의 시위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는 기존 신문의 보도 태도와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9월 30일자 중앙의 종합 일간지들은 일제히 5·18 관련 동맹휴업과 시위 1면 톱기사나 중간기사로 다루고 있다. 이에 반해 월드컵 유치 신청기사를 1면에서 다룬 신문은 한국일보 한곳 밖에 없었다.

방송의 ‘월드컵 부풀리기’와 ‘5·18 죽이기’식 보도는 이 날 하루에만 그치지 않는다. KBS와 MBC의 양 방송사는 그동안 계속돼 온 대학생들과 대학교수들의 시위와 성명을 가능한 한 외면해 왔다. 특히 87년 6월 항쟁 이후 처음으로 번져가도 있는 교수 성명은 교수 5천여명이 서명하는 동안 3~4차례 단신으로 처리하는등 보도에 심한 편파성을 드러냈다.

이에 반해 월드컵 축구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의 부산순시등 기회 있을 때마다 부풀려 왔다. 또 KBS와 MBC 양방송사는 월드컵과 관련된 마라도나 초청을 걸고 한바탕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 경쟁 끝에 마라도나 경기를 유치한 KBS는 이경기에 삼성과 대우등 재벌그룹의 협찬을 끌여 들이는 과정에서 보도국 경제부를 동원, 물의를 빚었다. KBS는 또 이협찬의 대가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일방적인 홍보기사를 내보내 보도국 기자들과 노동조합이 성명을 발표하는등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월드컵은 부풀리고 5·18은 대충 넘기려는 방송은 시청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80년 5월 당시, 왜곡보도에 앞장 섰던 방송이 특별법 제정 움직임마저 축소하려 했다는 비난을 모면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 민실위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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