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은 미리 짐작해 판단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기자가 기사의 근거가 되는 자료 등을 확보하기 전에 미리 결과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일종의 ‘추측’인 것이다.

그같은 경우는 기자의 판단 미숙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더 이상 취재가 곤란한 상황으로 인해, 또는 오랫동안 누적돼온 관행 등에서 기인하는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단에 의한 오보의 발생은 비단 기사뿐만 아니라 사진에도 그 가능성이 있다.

뉴스위크지는 91년 11월 11일자 영어판과 일어판에 ‘너무 빨리 부자가 되다’(Too Rich Too Soon)라는 기사에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을 배경으로 여대생 5명이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설명은 ‘돈의 노예들 :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라고 달았다. 그러나 이 사진은 한국어판에는 실리지 않았다.

기사 내용은 경제 성장을 계속해 오던 한국에서 경제 성장보다 빠른 속도로 소비성향이 증가, 사치성 고급 물건의 소비가 늘고 과소비 풍조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것. 반면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하려는 의식보다 투기나 부정한 방법으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경향이 짙어져 문제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기사 중에는 대학을 갓 졸업한 아무개씨는 “출세나 벼락부자, 과소비 등이 선망의 대상이 돼 남자들이 결혼할 때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통탄해 마지 않았다는 부분도 들어 있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사진 속의 여대생 가운데 권아무개양 등 3명은 명예훼손과 초상권을 침해당했다며 뉴스위크지를 상대로 각각 1억원씩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본인의 동의없이 사진을 찍어 사회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내용의 기사 중간에 삽입한 것은 초상권 침해와 명예훼손에 해당하므로 각 3천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이 사안은 뉴스위크지 사진기자가 기사 중의 내용과 적절히 어울리는 효과사진을 찾다가 나름대로 ‘그림’이 될만한 곳을 유추, 이화여자대학교를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다른 유형의 사진도 찍어 데스크에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정작 사진 속에 나온 5명의 여대생들은 당일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정장을 하고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뉴스위크지의 사진기자는 정장을 한 여대생을 ‘평소에도 비싼 옷을 입고 다니는 여대생’으로 예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진기자나 데스크의 머리에는 한국의 여대생, 특히 이대생들이 옷을 화려하게 입고 다닌다는 선입견이 자리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여대생들에게 한마디만 물어 봤어도 사진게재에 신중을 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에도 예단이 들어가면 기사와 마찬가지로 곤란한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은 항상 정확성을 근거로 해야한다는 사실을 사진기자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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