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가: 서울방송의 뉴스앵커인 맹형규씨가 민자당에서 내년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대.
시민 나: 그럴리가 있나. 어제 뉴스 진행하는 것을 봤는데.
시민 가: 신문에서 봤어. 민자당 서울 송파을지구당 조직책으로.
시민 나: 그러면 맹형규씨는 정치를 하면서 뉴스 앵커를 했단말이야?
시민 가: 그러게 말야. 어느 정당이고 지구당 조직책을 결정하기까지는 적어도 몇달동안은 숙의가 이뤄졌을텐데. 그러고도 뉴스 앵커 노릇을 계속했다니 정말로 간 큰 남자네.
시민 나: 나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했어. 그래도 본인은 공정보도를 했다고 하겠지?
시민 가: 얼마전에는 한국방송공사의 앵커인 이윤성씨 그리고 박성범씨도 정계로 진출했잖아.
시민 나: 텔레비전 뉴스 앵커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닌데….

필자가 지하철을 탔을때 30대의 젊은 청년들이 앞에 서서 주고받은 대화의 한 토막이다. 이 시민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보통 문제가 아니다. 얼마전 S대학 신문학과 교수가 필자와 점심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충격적인 말을 했다. 한 학생이 기자가 되려는 이유를 출세가 빠르기 때문인데 언론고시는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보다 쉽고 또 언론사는 임금도 높은데다 관계나 정계로 뛸 경우 다른 직종에 있는 사람보다 휠씬 높게 뛸 수 있다고 이야기하더란다.

박정희 대통령이 5·16군사혁명을 일으키고 통치수단으로서 먼저 손을 댄 것이 언론이었다. 그들은 문화방송과 경향신문을 차례로 인수했으며 각 언론기관을 당근과 회초리로 다스리면서 언론인을 정치권력에 끌어들이는 술수를 썼다. 이로 인해 언론인들은 권력에 충성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충원된 언론인으로 하여금 언론사를 관리하게 하는 이중적 효과를 노렸다. 또한 언론사는 정치권에 들어간 자사 출신 언론인을 통해 권력과 줄을 잇는 효과를 노려왔다.

윤주영씨가 문공부장관을 할 무렵에는 해외공보관과 각 부처 대변인으로 많은 언론인이 관계로 쏟아져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송건호선배는 기자협회보에 “언론인은 언론을 천직으로 알아야지 언론을 징검다리로 이용해서 관계나 정계로 진출하려는 사람은 진정한 언론인일 수 없으며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질타한 적이 있었다.

요즘도 권력의 수법은 변함이 없다. 언론은 권력의 제4부라고 한다. 그것은 행정·입법·사법 3부를 견제할 능력이 있을때 제4부의 권력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언론은 상업언론으로 타락했다. 언론기관은 언론재벌로 치닫고 있으며 언론인 가운데 ‘무관의 제왕’이라는 자리를 마다하고 정치 권력에 줄을 잇기 위해 목을 빼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국가의 민주발전을 위해서도 불행이며 민주 언론의 암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제시한 방송법 개정 방안에 ‘사장은 임기를 보장하되, 임기중이나 퇴임후 일정기간안에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좋은 안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언론인 모두를 포함해 퇴직 후 몇년 안에는 여야를 비롯한 정치 권력에 갈 수 없다는 강제조항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본다.

구한말 당시의 기자들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지사들이었다. 시민들이 송사문제가 있을 때 기자를 초빙해서 이렇고 저렇고 송사를 나눈 후 기자가 이것이 옳다고 판결하면 순응했다고 한다. 기자는 역사를 기록하는 기록자다. 역사를 훼손하는 기자가 돼서는 안된다. 언론인 한사람 한사람이 어느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정도를 함께 걸을 때 우리나라 역사는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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