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11월 1일자 한겨레신문엔 부끄러운 언론의 자화상이 공개됐었다. 보사부 출입 기자들이 언론재단과 업체들로부터 지원금을 조성해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남은 돈은 촌지로 나눠쓴 사건이 밝혀진 것이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해당 언론사들은 관련 기자를 사퇴시키고 사고를 통해 서둘러 기자단 탈퇴와 윤리강령 제정을 공표했다. 그 내용 속엔 업체 지원 해외출장과 촌지 등 ‘취재활동과 관련된 일체의 반대급부을 거부한다’는 대목도 분명 들어 있었다.

그러나 93년 1월 과기처 기자들이 원자력문화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홍보성 해외시찰을 한 데 이어 9월 환경처 기자들이 삼성전자의 후원을 받아 유럽출장을 한 것이 밝혀지면서 언론사들이 사고에서 요란하게 밝힌 자정약속은 서서히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삼성, 선경, LG, 두산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이 지원하는 해외 나들이에 나서는 기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제 문제는 많은 기자들이 기업체지원 해외출장을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본다는 사실이다. 해외출장을 다녀온 기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해외 출장이 “아주 유익했다”고 ‘떳떳하게’ 밝히고 있다. 그냥 놀러간게 아니라 ‘취재를 하러갔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실제 현지에서 기사를 송고하거나 귀국한뒤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체지원 해외출장은 기본적으로 취재활동에 큰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없지 않지만 기자의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두산그룹의 경우처럼 명목상 한두개의 취재건을 만들어놓고 아예 관광으로 일정을 채우든지 삼성, 선경, LG처럼 스폰서가 된 업체의 공장 견학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외유 대열에 부장단들까지 가세할 전망이고 보면 기업체 지원 해외취재를 거부하는 기자들이 오히려 ‘돌출분자’로 낙인찍힐 상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또 농수산부의 경우처럼 취재목적이 얼마나 유익한지는 몰라도 여러 관련단체에서 기금을 조성해 해외출장을 떠나는 경우는 말썽을 빚을 소지도 적지 않다. 기자들이야 농수산부가 주선해준 것으로 알고 있겠지만 이들 기자들의 해외취재를 위해 일정액을 각출해야 했던 농수산부 산하 기관의 시각은 지극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기국회 개회와 국정감사 등 중요한 쟁점이 부각될 수 있는 시점을 전후해 그다지 시급한 것도 아닌 기업체들의 해외현지 공장 견학등을 이유로 줄이어 해외로 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 많다.

기업체 지원 해외출장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따져볼 때 기자 개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방조하고 나아가 부추기고 있는 언론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 언론사들은 취재가 시급하지 않은 외부 지원 해외취재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정작 당연히 비용을 들여야 할 해외취재에 대해서조차 이같은 외부 지원 취재를 당연시하는 풍토를 조성하고 있다.

필요한 취재가 있으면 당연히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럼에도 언론사에서 부담해야 할 해외취재비용을 당연한듯이 기업체등에 전가시키고 있는 것은 기본적인 ‘상도의’에도 어긋난 일은 아닌지 이제는 언론사들이 분명하게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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