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지상파방송사를 달래려다 신규 도입될 종합편성채널의 반발을 살 전망이다.

방통위는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진행된 2011년도 업무보고회에서 지상파 다채널방송서비스(MMS‧멀티모드서비스)를 언급했다.

MMS는 고화질방송(HDTV)을 기본으로 제공하면서 여유 주파수를 이용해 부가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MMS가 도입되면 기존 6MHz 주파수 대역에서 HDTV뿐만 아니라 표준화질방송(SDTV), 오디오·데이터 방송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디지털 압축 기술의 향상 덕분으로, 2006년 시험방송이 시작됐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011년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KBS의 'K-뷰' 플랜으로 대표되는 이 MMS는 종편채널에 위협적인 요소다. 김인규 KBS 사장은 영국의 프리뷰를 벤치마킹해 디지털 전환에 따라 추가로 생기는 채널을 이용, 현재의 KBS1, 2TV 외에 24시간 뉴스전문채널, 드라마 전문채널 등 5~7개 채널을 추가로 더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KBS 뿐만 아니라 MBC, SBS, EBS 등도 이 MMS를 추진하기로 한 상태다. 지난 16일 지상파방송 4사 사장단은 '시청자 서비스 강화' 공동사업의 일환이라며 '무료 다채널 서비스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지난 8월 "MMS로 한 채널당 비디오가 3개씩 확장되면 수도권에서 지상파 대 종편의 싸움은 6대 1이나 6대 2가 아니라 18대 1이나 18대 2의 싸움이 된다"며 "이는 종편을 존재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종편 도입 반대론자인 양 위원은 현재의 종편관련 논의가 허상에 그치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결국 연내 선정될 전망인 종편은 시청률과 광고수익을 놓고 KBS1 KBS2 MBC SBS EBS OBS와 싸우는 게 아닌, 이들 및 이들의 분신과도 경쟁해야 된다는 결론이다. 종편이 몇 개 선정될 지도 모르는데다가 KBS 수신료 인상에 따른 광고 폐지도 없는데 MMS까지 도입된다면 종편의 사업성은 크게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방통위는 지난 15일 사전 브리핑 직후 관련 대목을 일부 수정했다. '지상파 다채널방송서비스 도입을 위해 운영주체, 면허방식, 채널구성 등 정책방안과 관련 법제도 정비방안 마련'하기로 한 것에서 '도입'이라는 말을 빼고 '필요시'라는 단서를 붙인 것이다.

정책방안을 마련하긴 하는데, 도입을 전제로 하지 않고 그것도 필요시에 하겠다는 것이다. 이 수정과정에는 종편 승인 신청사 쪽의 항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디어업계의 한 전문가는 "방통위가 종편도 살리고, 지상파에 떡도 주고, 시장경쟁도 활성화시키려는 의욕은 넘치나 종편과 지상파 사이의 좁힐 수 없는 이해관계 조정에는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방통위가 업무보고 들머리에서 콘텐츠 사업의 영세성 문제를 심각히 지적해놓고서는 향후 스마트 환경에서 콘텐츠 사업자의 수익성을 좌우할 '망중립성' 문제는 어물쩍 지나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용량 데이터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포털이나 P2P 등 일부 콘텐츠사업자는 과다 트래픽을 유발하게 되는데, 망 사업자가 이들에게 추가과금을 하게 할지 말지가 문제다. 망 사업자들의 트래픽 제어를 허용하면 인터넷업계가 불리하게 되고 그 반대라면 망 사업자들의 망 투자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방통위는 옛 정보통신부 시절부터 망사업자들에 우호적이었으며, 사실상 방통위의 씽크탱크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지난 11월 과다 트래픽 유발자에 추가과금하는 방안을 제시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이 대통령의 콘텐츠산업 육성 의지와는 배치될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며 통신사의 무선인터넷(Wi-Fi)망 구축을 유도하겠다는 것도 트래픽 폭주로 망중립성 논란에 불을 붙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2011년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외에 방통위가 지상파 재송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도 주목된다. 지상파방송사와 케이블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는 이를 두고 법적다툼을 계속해 왔다.

방통위는 국민의 시청권 확보를 위해서라며 현재 KBS1과 EBS만 해당되는 의무재송신 채널의 범위를 재설정하겠다고 업무보고에서 밝혔다. 그러나 방통위가 만약 KBS2까지 포함시킨다면 김인규 사장 포함 KBS 구성원들이 가만히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와 MBC까지 포함시킨다면 최시중 위원장의 이른바 '정명론(正名論)'과 배치될 수 있다.

최 위원장은 취임 이후 여러 차례 "MBC의 정명은 무엇인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해왔는데, MBC를 의무재송신에 포함시킨다면 '정명론'의 속뜻과 달리 공영방송이라는 것을 자인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31일까지 완료해야 하는 디지털 전환 관련해서도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을 졸속 강행 처리하는 바람에 예산이 누락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상파 직접수신 개선사업에 쓸 돈도 모자라고, 유료방송 기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돼 방통위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게 됐다.

2011년도 주요 과제 중의 하나로 꼽은 '사이버 공격과 사회교란 유언비어에 대한 대응 강화' 역시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파장이 불가피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