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탈을 쓴 망국적 포퓰리즘 정책을 거부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2월 3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전면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으로 규정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의 TV토론을 요구하면서 쟁점화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무상급식에 제동을 건 서울시장의 선택은 의외다. ‘왜?’라는 물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는 했다. 오 시장 행보를 향한 비판이 많았지만, ‘무관심’은 아니었으니 나름 의미는 있었다. 그러나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는 여야가 새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 전면 대치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처리가 12월 8일 단행되면서 ‘형님예산’을 둘러싼 논란이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서울시장의 승부수는 의외의 복병 때문에 탄력을 잃었다. 운이 없었을까. 아니면 오 시장 참모의 작전 실패일까.

   
  ▲ 오세훈 서울 시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 신당초등학교를 현장방문, 무상급식 등과 관련된 학부모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 SUNDAY>의 12월 12일자 기사는  ‘오세훈 정치’를 다시 관심의 초점으로 부각시켰다. 오 시장은 “나도 정치인이니까 솔직히 그런(대선출마) 여지는 열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원론적인 얘기였고, 솔직한 얘기였다.

지방선거 출마 때는 서울시장 재선 임기를 마치겠다고 밝혔지만, 오 시장이 2012년 대선 출마 가능성을 닫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출마에 무게를 실은 것도 아니다. 서울시 대변인은 “오 시장은 정치인으로서 가능성을 열어 둔 것뿐이라며 지금은 시정에 전념할 때”라고 해명했다.

출마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는 속내를 언론을 통해 드러냈다는 점에서 언론의 반응은 곱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12월 13일자 6면 <오세훈 “내 업적 MB 못잖아…대선출마 열어 놔”>라는 기사에서 “2012년 대선까지를 염두에 두고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튀는 행보’를 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고 비판했다. 앞서 국민일보는 12월 11일자 <거꾸로 가는 서울시?>라는 기사에서 “(무능 공무원 퇴출제 폐지는)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오 시장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시 공무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퇴출제’를 없앤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오 시장 입장에서는 속이 쓰린 보도이다. 하지만 씨앗을 뿌린 것은 오 시장 자신이다. 오 시장의 선택은 두 가지다. 2014년 6월까지 보장된 서울시장 임기를 채우거나, 중도 사퇴 후 2012년 대선 레이스에 뛰어드는 방법이다. 오 시장 입장에서는 ‘꽃놀이 패’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서울시장의 거취는 한국정치와 대선구도를 요동치게 할 수 있는 주요 변수이다.

간보기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최근 오 시장의 ‘튀는 행보’에는 조급증이 엿보인다. 서울시의회와 부딪히고 서울시교육감과 공개 토론하자면서 호기 있게 전선을 형성하는 모습 모두 존재감을 부각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오 시장은 한국 정치에서 자신의 위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민선 서울시장에 연이어 당선된 인물은 오 시장이 유일하다. 수도 서울을 8년간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자산이자 기회다. 그러나 중앙 정치무대에서 오 시장의 ‘정치 상품성’은 의문 부호가 달려 있다.

기초단체장 출신 야당의 한 의원은 최근 국회 출입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오 시장과 전임 이명박, 고건 전 서울시장을 비교하면서 “초등학생과 대학생을 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 시장 ‘시정 능력’을 혹평한 셈이다. 오 시장은 지난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인 한명숙 후보에게 0.6% 포인트 차이로 ‘진땀승’을 거둬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지만, ‘강남 시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오 시장은 서울 25개 구 가운데 17곳에서 패했고 8곳에서 승리했지만, 강남 3구의 몰표 덕분에 승리를 차지했다.

오 시장의 최근 튀는 행보는 존재감 부각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조급증’이 드러났다는 점은  중장기적으로는 오 시장에게 마이너스 요인이다. 오 시장은 한나라당 출신이지만 상대적으로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지닌 인물이다. 자신의 정치적 장점을 살리고 서울시장으로서 성과를 낸다면 중앙정치 무대에서의 경쟁력에 대한 의문도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인의 ‘큰 꿈’은 본인이 완성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국민은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정치인에게 눈길을 돌리는 법이다. 조급증이 배어 있는 튀는 행보로 언론의 눈길을 끌고자 노력하기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리고, 정치철학을 검증 받는 것이 서울시장다운 행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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