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동차 협상이 타결돼 미국 슈퍼 301조의 우선협상관행국 지정은 면하게 됐으나 왠지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선 일사불란한 협조속에 최선의 전략을 수렴하기는커녕 부처간 주도권 다툼을 노출했고 이 때문에 협상타결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둘째로 미국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선에서 협상이 타결됐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라면 애초 협상이 필요했는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셋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301조의 관심 대상국으로 남아있고 항시라도 WTO에 제소당할 수 있는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의 양보가 우리의 무역장벽 개선노력에 대한 인식을 전혀 개선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번 자동차협상, 그리고 이보다 앞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미국과의 냉동육류나 감귤류 협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협상능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며 이의 개선이 제도와 관행의 개선 못지 않게 주요한 통상정책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게 한다.

더욱이 지금 미국과 유럽연합이 합세, 아시아에 대한 관행으로 인해 우리의 개방정도에 대한 선진국의 불만이 점점 증대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선진국의 통상공세가 점차 강해질 것이 예상되므로 효율적 대응체제의 정비가 시급하다.

현재 우리의 통상마찰에 대한 협상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우선 실리보다는 명분추구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통상협상의 본질은 양국간이 상충하는 경제문제에 있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명분이 경제적 실익을 앞서서는 안 될 것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 협상에서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쌀시장은 지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즉 경제적 실익보다는 정치적 명분이 협상을 주도했고 이를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쌀시장마저도 개방하게 되지 않았는가? 여기서 우리 협상체제의 또 다른 문제점 즉 전략다운 전략의 부재를 지적할 수 있다.

이번 자동차 협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협상은 국력의 싸움이 아니라 전략의 싸움이다. 줄 것과 지킬 것을 명확히 정한 뒤 상대방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를 제시하는 것이 그 기본이 돼야 한다. 가능하면 우리 것을 지킨다는 수동적 전략으로는 국력이 약하고 공격당하는 입장에 있는 우리로서는 결국 모든 것을 내 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의 협상에 있어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전략적 통상을 수행하기 위해선 정치적 영향력에 간섭받지 않고 총괄적인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전문통상체제가 전제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외무부가 대의교섭의 창구가 되고 재경원이 대내조정을 담당한다는 기본구도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운용에 있어선 그 기본취지를 살리지 못해 부처간 의견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며 공식채널외에 관련부처가 독립적인 협상을 진해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일관성이 결여되고 우리정부의 신뢰도를 해치는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부처이기주의가 생기기도 한다.

미국은 무역대표부(USTR)라는 독립적인 조직이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통상전략 및 협상을 전담하고 있으며 이러한 체제가 상당히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에 비춰 우리도 이와 유사한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한다.

공격을 당하는 입장에 있는 우리로선 이러한 기구가 통상공세의 표적을 명확히 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으나 더 이상 선진국의 통상압력을 어물쩡 넘겨버릴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 일본이 이러한 태도로 미국의 분노를 사게 됐고 결국 수년에 걸쳐 거센 통상공세를 받게 됐다.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기보다는 전진적 자세로 통상공세에 임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전략적 통상을 펼쳐나가기 위해선 상대방 입장과 약점을 우리 전략에 활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 현재 로비체제의 가동, 상대국의 무역장벽 조사, 소비자 언론조성 등을 총괄할 수 잇는 체제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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