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국회 상황에 대해 ‘양비론’을 꺼내든 언론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방송사 뉴스도 그렇고 주요신문 반응도 그렇다. 왜 그토록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언론장악을 시도했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새해 예산안 ‘날치기 처리’ 장면을 요약하면 “정치는 죽었다”로 정리된다.

하지만 언론은 양비론을 꺼냈다. 정치적 책임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는 집권 여당의 예산안 강행처리에 비판의 칼날을 세우기보다 ‘국회는 싸움질 하는 곳’이라는 프레임 전파에 공을 들였다.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양비론은 여야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균형’의 의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문제의 본질을 덮는 유용한 수단이다. 여당도 잘못했고, 야당도 잘못했다는 주장, 폭력은 나쁘다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무서운 노림수’가 숨겨져 있다.

12월 9일자 주요 언론사 1면 사진기사와 머리기사 제목을 살펴보자.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은 <1박2일 패싸움…부끄럽다 '대한민국 국회'(조선일보)> <올해도 어김없는 '연말 폭력국회'…낯 뜨거운 한국정치 현주소(동아일보)> <멱살잡이․주먹질․발길질…안보위기속 무법천지된 국회(서울신문)> 등 각각 폭력으로 얼룩진 국회 장면을 부각시켰다.

   
  ▲ 동아일보 12월 9일자 1면.  
 
   
  ▲ 서울신문 12월 9일자 1면.  
 
부끄럽고 낯 뜨겁고 무법천지라는 비판이 담겨 있지만, 대상이 모호하다. 그냥 정치권이 국회가 그렇다는 얘기일까. 전형적인 ‘폭력 양비론’의 전형이다. 난장판 국회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알리려는 노력보다는 ‘정치는 싸움질 하는 곳’이라는 프레임 전파에 열중하는 언론의 모습이다.

물론 이러한 언론의 선택은 의도가 담겨 있다. 무엇일까? 이번에는 한겨레와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를 보자. <한나라, 새해 예산안 단독 강행처리(경향신문)>.

사태의 본질, 사태를 부른 주체가 누구인지 머리기사에 적시하고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의 1면과 한겨레 경향신문의 1면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그래도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새해 예산안’ 여 단독처리>로 뽑아 팩트를 전달하려 했지만, 서울신문은 머리기사 제목도 <또 난장판…또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로 뽑았다.

   
  ▲ 경향신문 12월 9일자 5면.  
 
언론의 ‘폭력 양비론’은 ‘의회 독재’를 부른 3년 연속 예산안 날치기 상황의 물타기와 다름없다. 너무 익숙해진 것일까. 최근 들어 연말이면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몸싸움을 하고 여당은 강행처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전에는 새해예산안 만큼은 여야 의견을 절충하고 조율해서 처리하는 게 ‘오래된 관행’이었다. 지금처럼 육박전을 전개하면서 극렬히 대립하는 모습, 여당이 ‘마음대로’ 수백조 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모습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지는 장면이다.

   
  ▲ 한겨레 12월 9일자 1면.  
 
문제는 국민이 땀 흘려 벌어서 내는 세금을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하는데도 정부의 예산안을 제대로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사실상 ‘청와대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혈세가 어떻게 빠져나가고 누구의 배를 불리고 있는지 자세히 알리지도 않은 채 ‘폭력 국회’ 논란으로 본질의 초점을 이동시키려는 언론의 태도는 비판받을 일이다.

‘폭풍우’와 같았던 예산안 처리가 끝난 이후 실상이 드러나자 또 한 번 충격으로 이어졌다. 정치 실세들의 ‘검은 속내’가 드러나고 있고, 정작 예산이 배정돼야 할 곳은 삭감되는 상황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웃음꽃 밥상을 책임질 ‘무상급식’ 예산은 0원으로 결론이 났다. 한나라당은 전면 무상급식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 결식 아동 방학 중 급식지원 예산도 전액 삭감돼 ‘0원’이라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309조 567억에 이른다는 새해 예산안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세부 항목의 문제점을 따져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을 들이는 4대강 사업 예산은 수자원공사 관련 예산을 포함해 모두 9조 3300억 원에 이른다.

“4대강 사업은 건드릴 수 없다”는 최고 권력자의 의중은 여당 국회의원들의 행동 지침이 됐고, 이번에도 4대강 사업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배정됐다. ‘대통령 형님’인 이상득 의원의 막강 파워도 재연됐다.

국민 혈세는 이명박 대통령 형제의 쌈짓돈이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정부에서도 신청하지 않은 대통령 형님 예산이 수백억 원 추가됐다. 309조 예산안의 ‘숨은 문제점’을 파헤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다. 또 어떤 문제점이 발견될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 예산안 놓고 여야가 인내심을 갖고 협의해서 결론을 찾으려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돈이 아닌 국민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돈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자금이기 때문이다.

   
  ▲ 이명박 대통령 형님인 이상득(사진 오른쪽) 의원과 박희태 국회의장. ⓒ연합뉴스  
 
힘 있는 분의 지역구에 챙겨주고자 최고 권력자의 ‘하고 싶은 일’에 투입하고자 세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여야가 따로 없고 진보보수가 따로 없는 일이다. 꼼꼼하게 따지고 또 따져서 적정한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생략됐다. 힘의 논리가 반영됐다. ‘청와대 오더’는 여당을 그냥 거수기로 전락시켰다. 그런데도 언론은 비판의 칼날을 놓았다. 적당히 양비론으로 사안을 넘어가려 든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로 다가오니 적당히 연말 분위기에 젖으라는 ‘배려’일까.

언론의 양비론은 정치혐오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 국민이 정치를 잊으면, 정치를 외면하면 뒤에서 웃는 이들은 그들만의 정치, 바로 '독재'를 꿈꾸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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