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의 정치현실과 그것을 담아내고 있는 언론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선 거듭된 충격적인 역사청산의 모습은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다분히 혁명적이라할만 하지만 ‘가슴속이 확확 타는 듯한 감동’까지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이 파격적인 조처를 취하는 실세들이 오랜 기간동안 일관된 정치 노선으로 힘들여 노력한 뒤 그것을 어렵게 쟁취한 것이 아니라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그 혁명적인 듯한 조처에서 어떤 칼날같은 철학과 뜨거운 열정이 배어나지 않는 대신 어떤 정치적 필요와 계산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노림수가 너무 분명해서 그럴 것이다.

이런 미묘한 정치적 상황을 보도하는 언론 또한 매우 어정쩡한 입장으로 몰리면서 본원적인 질문을 받고 있다. 즉 불행한 정치적 과거가 청산되는데, 바로 그 불행한 정치적 과거에 연루된 언론은 아무런 자성의 흔적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지적 앞에서 머쓱해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그리 멀지않은 과거에 언론이 찬양해 마지않았던―그것이 강제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자발적인 것이든―옛 권력자들을 매도하는 모습은 매우 부자연스럽게 비춰지고 있다.

특히 언론이 오늘의 권력자에게는 양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느 권력자라도 일단 권좌에서 물러나는 날 모든 언론으로부터 물어뜰길 것이라는 음산한 예고로 보이기도 한다. 이때문에 진정한 언론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인가라고 묻는 국민의 눈총이 점차 따가워지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김정권의 태생적 한계를 고려할 때, 특히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구태의연한 정치감각으로는 가히 돌발적 사건임이 틀림없다. 언론 또한 이런 급박한 상황 전개속에서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그 와중속으로 휩쓸려 들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권력의 거듭된 강수가 가진 한계, 즉 집권자가 아무런 설명없이 방향을 급선회하고 검찰 등 권력집행기관의 뻔뻔스러울 만큼 철저한 정치성향 발휘때문에 거듭된 5·6공 청산 조처는 국민의 열렬한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적잖은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이 예전에 권력형 비리를 밝혀놓고도 집권자의 의중에 따라 그것을 단죄하기도 하고 은폐하기도 한다는 것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른 감이 든다. 공권력이 진정한 국민의 공복이 아니라 권력자의 수족처럼 보여진 비극적 현실은 많은 사람을 허탈감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최고 권력자가 검찰의 그런 속성을 개선토록하기는 커녕 그 속성이 가진 기능적인 측면을 최대한 우려먹으려는 모습은 과거 군사정권 때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비정한 동물적 논리가 민초들의 가슴을 짖누르고 있다.

어쨌거나 이런 태풍정국속에서 언론의 뉴스 전달기능만은 그 어느때보다 돋보였다. 그렇지만 언론은 거듭된 권력의 깜짝쇼에 정신을 차릴 수없이 끌려가다보니 신문의 지면과 방송의 뉴스 시간을 몽땅 할애해야 충격적인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빠듯한 형국이었다.

언론은 제 나름대로의 방향감각을 가지고 현실을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애쓴 흔적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신문 지면과 방송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숙명적 한계를 잘 알고 있는 권력은 언론이 숨돌릴 사이없이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 쏟아붓는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언론을 권력의 선전도구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언론과 권력의 이런 관계는 마치 언론을 장악한 자가 천하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는 옛말을 연상시키기에 족했다.

오늘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양적인 변화에서 질적인 변화의 단계로 이행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 동기가 의심스럽다해도 과거 청산 작업이 거듭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군사문화의 어두운 유산과 권위주의의 폐습이 제거되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총체적으로 우리의 민주역량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권력자가 아무리 정치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라 해도 이제는 3당 합당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깨지 않으면 권력의 신선미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 현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전반적 정치의식이 크게 높아져 김정권이 군부통치의 뿌리를 걷어내는 식의 개혁을 취하지 않으면 원활한 환경을 유지하기 어려운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김대통령이 아무리 비싼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어도 3당합당의 고리를 깨는 쪽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유권자의 입맛이 그만큼 까다로워졌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는 헤아릴 수 없는 희생속에 거듭된 민주화 운동이 결실을 거두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현실의 질적인 변화를 웅변하고 있다.

언론은 이제 이런 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진정한 역사 청산은 언론의 과거 청산없이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확산되고 있고 지난 반세기 동안 되풀이된 역사적 부조리의 동반자였던 언론의 자체개혁이나 자정활동은 피할 수 없는 가까운 미래로 다가오고 있다. 악취나는 권언 유착의 고리가 역사청산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