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개혁을 밑으로부터 일구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힌 중앙일보 고흥길 신임 편집국장을 취임 열흘째 되는 날인 7일 오후 편집국에서 만났다. 토요일 오후임에도 그는 9일부터 시작되는 가로쓰기 편집 때문에 무척 바빠보였다. 인터뷰를 1주일 뒤로 미루면 어떻겠느냐는 요청에서 얼마나 시간에 쫓기는지를 짐작케 했다.


취임 이후 편집회의 시간이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로 바뀌었는데.

“10시에 하다보니 취재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아이템이 제출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시기성이 떨어지는 아이템이 나오든지. 이건 조간을 만드는 태도가 아니다.”



“94년 3월 개혁을 선언한 이후부터 중앙경제 통합, 조간화, 섹션화 등 가히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 왔다. 가로쓰기 편집은 1년반 전부터 계획된 개혁 프로그램의 하나다.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40대 이하는 모두 한글 가로쓰기에 익숙한 세대다. 이 세대들에게 호응받지 못하는 신문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50대 이상의 장년층에겐 일정한 거부감이 있으리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런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가로쓰기를 하면서도 한자를 섞어 쓰거나 세로제목을 넣기도 했다.”

독자위주의 신문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상식적인 얘기 같지만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대부분이 독자를 위한 신문을 만든다고 하면서 사실은 ‘신문쟁이’들을 의식한 신문을 만들었다. 우리는 남의 기사라도 좋은 것은 보충취재를 통해 재가공해 반드시 실을 것이다.”

중앙일보는 정보엔 빠르지만 비판엔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문의 성격도 변한다고 본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엔 비판 기능을 위주로 한 정론지가 신문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민시대다. 비판보다도 유익한 정보가 더 중요하다. 중앙일보가 막대한 재원을 들여 기자교육을 시키고 전문기자제를 도입한 것은 폭넓고 깊이 있는 정보를 담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다.”

직도 권위주의가 남아있지 않은가.

“비판기능만을 앞세울 시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앙일보는 특종을 잡고도 눈치를 살피다 제대로 기사로 다루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는데.

“내가 국장으로 있는 한 실을 가치가 있는 것은 꼭 싣겠다. 사실 중앙일보를 비롯해 언론들이 과거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주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삼성이란 ‘원죄’ 때문은 아닌가.

“삼성 때문에 보도가 제한된다고 일부에선 오해하지만 삼성의 간섭은 없다. 오히려 중앙일보는 삼성의 장애가 될 때가 있고 삼성은 중앙일보의 장애가 될 때가 있다. 96년 삼성으로부터의 독립은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본다. 현재 이와 관련한 작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그때가 되면 오해가 말끔히 씻겨질 것이다.”

중앙일보가 신문시장에서 중기적으론 ‘빅2’를, 장기적으로 ‘빅1’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한데.

“절대 그런 패권주의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부수가 많다고 좋은 신문인가. 우리는 어디까지나 퀄리티 페이퍼를 지향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힐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부수도 늘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이번 인사와 함께 편집국 조직을 개편하면서 팀제를 크게 확대했는데.

“현장 냄새가 없는 기사는 의미가 없다. 기존 출입처 중심의 관변기사, 발표기사는 적극 없애 나가겠다. 이슈를 따라, 뉴스현장을 따라 움직이게 하기 위해 부를 줄이고 팀을 강화했다.”

점점 다원화, 복잡화 돼가는 사회 속에서 언론의 역할은.

“우리 언론인들의 사고가 시대변화를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 우리 언론은 너무 오랫동안 일제와 독재정권에 대치해 왔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언론인을 흑백논리에 젖게 했다. 이제 다원화된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야 한다. 다양한 현상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이젠 정치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탈정치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최근 5·18 관련자에 대한 진상규명과 처벌의 목소리가 높다. 언론노련 산하 각 노조도 대대적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아직도 언론은 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우선 5·18에 대한 나의 입장은 검찰의 법논리에 동의하지 않지만 소급입법을 통해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각 언론사가 사설을 통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언론사 기자들이 서명에 동참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그리고 5·18을 크게 다루는 것은 정의고 적게 다루는 것은 불의라는 주장은 흑백논리다. 기사가치는 편집책임자가 판단할 문제다.”

앞으로 편집방향을 말한다면.

“시장경제원리를 모토로 삼고 있다. 굳이 좌우를 나누자면 경제적으론 ‘우’에 가깝고 사상적으론 중도 진보에 가깝다. 주공략층은 20~40대의 젊은 층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