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MBC 노조에서 구체적 방법과 대상인물까지 거론하면서 5·18 등과 관련한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자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은 이번 기회에 인적, 역사적 단절을 통해 방송 스스로가 거듭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절실한 요구의 반영으로 풀이된다.

KBS 노조는 5·18과 관련, 언론사로선 처음으로 회사측에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를 요구하고 있다. KBS 노조가 요구하고 나선 ‘사과성명’이 이뤄질 경우 언론계 내부의 구체적인 과거청산을 하나씩 이뤄나갈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회사측 고위간부들의 의지다. 11일 열린 공정방송위원회에서 회사측 대표들은 정회까지 해가며 숙의를 했지만 ‘불가’라는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려 일단 의지가 없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다수 고위간부들이 대국민 사과에 동의했으나 홍두표 사장의 ‘비토’로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KBS에서 포괄적 성격의 사과성명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 것에 비해 MBC 노조는 신군부 ‘협력자’의 대대적 거세를 통해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자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 주목을 끌고 있다.

MBC노조가 자기 회사 내에 여전히 실력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사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해가며 자기반성과 인적청산을 제기하고 나선 이유는 그만큼 적극적이다.

노조가 이렇듯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이면에는 노보를 통해 밝혔듯이 “5·18 당시 부정한 권력에 맞서 민주언론을 사수하려는 노력이 언론계 전체에 일어났더라면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폭압의 역사가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MBC 노조가 신군부에 협력한 내부인사들의 척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들이 MBC 내에서 여전히 요직을 꿰차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측면이 강하게 작용했다. 노조는 무엇보다도 당시 이진희 사장 주도로 추진된 자사 간부, 사원 97명을 길거리로 내쫓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이 이제는 단죄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이와함께 강제해직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들은 5, 6공을 거치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적시하고 이들이 군부에 협력한 대가를 화려하게 누리고 있음을 공격하고 나섰다. 노조가 노보를 통해 “해직명부 작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당시 김모 총무국장은 이후 보도이사, 관리이사, 사업이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지금은 전무자리에 올라있다”고 폭로했다.

또한 “당시 MBC자회사인 연합광고에서 8명의 광고인 해직에 깊숙이 간여한 것으로 지목을 받아 온 이모씨는 이후 MBC 기획부장, 기획이사, 대구MBC 사장을 거쳐 지금은 MBC 감사를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당시 평기자 신분으로 보도국 내부 ‘밀고자’ 역할을 자임했던 이모씨 역시 사회부장, 보도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MBC북경 지사장 자리에 앉아있다”며 동료 언론인들을 길거리로 내모는데 앞장선 이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언론학살 공모자라는 이유로 ‘단죄’ 대상이 됐다면 이모 현 청주MBC 사장, 또 다른 이모 춘천MBC 사장 등은 5·18을 왜곡하고 광주시민을 매도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들로 지목된다.

노조는 “당시 정치부장이었던 이모사장은 이낙용 당시 보도국장 밑에서 신군부의 ‘앞길’을 닦았다”고 폭로했고 또다른 지방MBC의 이모사장은 “당시 편집부장으로 있으면서 ‘뉴스진행자에게 수시로 메모를 전달하면서 뉴스왜곡에 앞장섰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이모 현 MBC 애드컴 사장은 당시 앵커로 활약하면서 광주시민을 ‘폭도’라고 매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인물”로 규정했으며 그역시 5, 6공을 거치면서 “워싱턴 지사장, 보도이사, 전무 등 화려한 이력을 더해왔다”면서 이들 ‘해바라기 인사들’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양 방송사 노조의 요구는 어쨌든 언론이 정국에서 떳떳한 모습으로 국민앞에 서서 구속된 전직 두 대통령에게 돌멩이를 던질 수 있으려면 먼저 언론 스스로의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언론계 안팎의 요청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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