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전국민의 관심이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에 모아지고 있을 때 터져나온 무장간첩 출현 사건을 다룬 언론의 보도태도는 철저한 사실확인보다는 사건의 충격을 확대해 보도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언론은 이날 무장간첩 출현 사실을 보도하면서 최초 신고자를 비롯, 도주 간첩에 대한 수색작업, 휴대 무기 등에 대한 확인에 소홀해 결과적으로 잘못된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우선 대부분 언론들은 신고자가 대전 주재 안기부 요원이었던 점을 들어 사건 현장에 최초 출동한 요원들이 안기부 요원이라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지난 10월 초부터 현장인 부여군 석성면 정각사에 잠복근무를 하고 있던 요원들은 서울시경 대공요원들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안기부 요원들이 현장에 잠복하고 있었다고 보도한 일부 취재기자들은 안기부로부터 항의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사실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보로 밝혀진 사례도 적지 않았다. 최초 보도에서 간첩이 휴대하고 있는 무기 중에 기관총이 있다고 보도한 경우(중앙일보)도 있으나 실제 간첩들은 무성 권총 1정씩만을 휴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군경 수색작업 도중 간첩과의 교전과정에서 총상을 입었다고 일부 언론(한국일보)이 전한 이모 이병의 총상은 실은 사고로 인한 오발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확인이 불충했던 데 대해 취재기자들은 군경의 확인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더욱이 군 당국자들이 기자들의 상황실 출입을 금지하는 등 제한조치가 많았던 점을 꼽고 있다.

현장 취재기자들의 지적처럼 현장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사실확인을 명확히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언론의 책임 또한 작지 않다고 하겠다.

한편 언론이 이번 간첩 검거 작전과 관련해 군경의 초동작전 미숙을 지적하지 않은 데 대해 애초 확대보도 경쟁 못지 않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군-경의 대공 작전태세의 문제를 냉철히 지적했었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2인조 무장간첩 사건은 안기부와 경찰이 이미 관련첩보를 확보한 상태에서 부여군 석성면 정각사 일원에서 잠복근무를 벌여오던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런 만큼 철저한 사전 준비만 돼있었다면 무장간첩의 검거는 손쉬울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안기부와 경찰 대공요원 10여명은 각각 1정의 무성권총만으로 무장한 2명의 무장간첩을 눈 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더욱이 부여지역은 이미 지난달 23일부터 무장간첩이나 후방지역적게릴라부대의 침투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95 독수리훈련’이 한창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역 군경 모두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며 예비군 동원령까지 내려진 상황이었다.

최초 작전단계에서 공조체제만 잘 이뤄졌다면 경찰관 1명 사망이라는 안타까운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나흘 동안 2명의 무장간첩을 검거하기 위해 3만여명의 군경과 22대의 헬기가 동원되는 ‘대소동’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우리 군경, 안기부의 허술한 대간첩 작전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국민일보와 한겨레신문뿐이었다. 다른 언론사들은 사실보도와 간첩의 검거에만 관심이 쏠린 듯했다.

이같은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한 신문사의 대전 주재기자는 “초기 검거작전의 실패로 인해 상당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며“언론이 평소 대북 경계심에 대해선 지나치리만큼 고취시키고 있면서도 이를 실제 담보할 군경의 대북 경계태세가 허술한 현실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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