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단체협의회 등 9개 사회단체는 지난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국가보안법,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광복 50주년 기념 인권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은 지금껏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논의가 주로 법적, 정치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돼 온 것과는 달리, 언론·문화·사회심리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다양한 측면에서 국가보안법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다뤄 관심을 모았다. 이날 심포지엄의 주요 발표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민주주의 기본 사상 부정

자유·민주·진보·통일의 족쇄 국가보안법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2천년전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증조할아버지로, 중세 유럽의 이단 처형을 할아버지로, 그리고 가까이는 일제 치안유지법을 아버지로 하는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에 의해 통치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암흑시대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속성은 본질에 있어 ‘자유’이다. 신체적 자유는 물론이고 그 보다는 정신, 사상적 자유가 바로 인간의 근본적 속성인 것이다. 그러나 국보법은 이같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흔히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인간의 사고, 즉 생각의 자유를 근거로 다양한 대화와 토론, 비판 등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는 사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국보법은 이런 비판과 토론, 생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국보법은 민주주의의 기본 사상을 부정하고 있다.

국보법은 또 살아 숨쉬는 개개인을 부정하고 인간을 추상화한다. 나치즘에 세뇌된 사람들이 유태인은 ‘없어져야 할 존재’로 규정하듯 국보법의 사고방식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든 사람들은 구체적이고 균형있는 판단 대신 국보법을 잣대로 누구는 ‘없어져야 할 존재’로 낙인찍게 된다.

이처럼 국보법은 그 법체계에 저촉된다는 이유만으로 개개의 구체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거부한다. 결국 국보법은 옳고 그름의 판단은 무가치하며 오직 ‘반공’만이 최고가치라고 여기는 획일적 인간형을 만들어 낸다. 국보법은 허무주의를 조장, 범죄와 타락, 부패와 부정 등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시키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번 비자금 파문의 주역이 이를 실증해주고 있지 않은가.
(리영희 한양대교수)

‘현실’ 이유로 문화 배척

국가보안법과 문화

국보법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에서 정신과 문화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무자비한 억압장치로 작용해 왔다.
인간의 정신작용과 그 결과물인 문화는 긍정과 부정의 역동성과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즉 비판과 반비판의 과정을 통해 인간의 정신작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보법은 이러한 인간정신의 긍정과 부정의 상호작용을 파괴함으로써 인간의 사고를 불구로 만들었다.

국보법은 문화·예술 분야의 기본적인 표현 영역인 창조성 즉,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향성을 간과하고 있다. 국보법은 현실과 예술의 관계를 차단하였으며 ‘현실’을 이유로 정신과 문화를 배척해 왔다.

국보법의 세계관은 관측소와 방카의 세계관이다. 즉 ‘가건물’인 관측소와 방카에서 바라본 세계는 극히 단기간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스스로 그같은 조건을 만들어내 세계와 자신을 단절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이 관측소와 방카의 세계관 아래서 문화는 본래의 창조성 보다는 이탈하려는 성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결국 문화는 퇴폐와 무기력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퇴폐는 지금 국보법이 지속돼 오면서 그 어떤 종교적·교육적 지도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풍속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 국보법이 권력의 질문인 “너는 누구 편이냐”를 내포하고 있는한 정상적인 사람들의 문화적 삶이란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누구의 편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며 이같은 질문은 인간의 정신과 문화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해야 하는 사회가 제기할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훈 시사저널 편집국장)

편견 함몰 불공정보도 만연

조선(북한)보도와 국가보안법

조선(북한)은 언론에게 최대의 기사공급원이다. 그런 만큼 정확성, 신빙성을 따질 것 없이 무차별로 기사는 쏟아져 나온다. 독자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필연적이다.

물론 언론이 조선을 알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91년부터 편집국 내에 북한부, 정치 2부, 통일부 등 명칭은 다르지만 조선전담부서를 두고 조선관련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폐쇄체제라는 조선의 자체 요인과 조선이라는 말만 나오면 신경을 한번 더 써야 하는 국보법, 언론 내부의 고질적 편견 등이 겹쳐 언론의 대북 정보 획득능력, 정확 공정한 보도는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해 있다.

특히 조선관련 취재는 내외통신, 국내 정보기구, 외신보도, 조선방문 교포, 귀순자 등이 주된 취재원으로 간접취재가 전부이다시피한 상황이다. 간접취재 금물, 현장중시라는 언론계의 기본원칙이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조선관련 보도에는 오보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까지 이어지는 김정일 비서 건강이상설이다. 김비서 건강이상설은 한마디로 ‘설’의 잔치였다. 사실로 확인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이같은 보도행태는 뿌리깊은 대북 적대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을 적으로 볼지언정 동반자로 보지않는 언론계 내부에 만연한 적대감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국보법이 강요하는 대북적대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언론의 공정하고 정확한 조선관련 보도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일용 연합통신기자)

독재정권 보호장치 구실

한국정치문화의 발달과 국가보안법

국보법은 ‘한국의 실질적인 헌법’이라 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정치분야만 보더라도 국보법은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로부터 정상적인 정치활동까지 통제해 왔다. 국가안보 보다는 주로 정권을 반대세력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정권안보법이었다고 하겠다.

실제 역대정권은 국보법을 이용, 반대세력을 탄압해 왔는데 80년 신군부 등장 이후 반공법과 통합 강화된 국보법에 의해 구속된 사람만 80년에서 94년사이 3천6백3명에 이른다.
국보법의 적용은 선거시기에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국보법 위반 사건을 터뜨려 적색공포증을 유발시킴으로써 사회 분위기를 보수화시켜 선거에서 여당의 승리를 도와주는 구실을 했다.

국보법은 또 반민주 악법의 상징으로 집권자의 자의적 운용에 의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 유린했으며 고문과 조작을 일상화시켰다. 또 불고지죄는 국민들의 상호감시, 밀고체제를 조장해 인륜을 파괴시켜 왔다.

국보법 사건은 거의 예외없이 미묘한 정치적 시기에 그 적용 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인다. 더욱이 대부분 국보법 위반사례는 참혹한 고문 등에 의해 조작된 사건들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국보법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독재를 지켜왔다는 사실을 이제 국민들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보법은 폐지돼야 한다.
(손혁재 21세기 프론티어)

동족 상호간 적대의식 강요

국가보안법과 적색공포

반공주의의 가장 강력한 물리적 담보인 국보법은 최근 반공주의가 이완·약화되는 현상을 보임에 따라 개폐의 운명에 처하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국보법은 비록 무딘 칼이지만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반공주의는 아직도 국민들의 무의식 가운데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반공주의는 국민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최고의 국가이념이었으며 기존질서에 대한 문제제기를 제압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했다.
이같은 반공주의는 일제시대에 형성됐다.

일제는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민족해방운동이 가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공주의를 확산시켰다. 반공주의는 6·25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집단간의 적대감, 정신적 긴장및 보복심리 등이 결합돼 매우 공격적인 성격으로 변질됐다. 또 전쟁이후에는 전근대적인 터부 혹은 종교적 성격 마저 지니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반공주의는 집단병리현상과 같은 적색공포로 심화돼 갔다.

결국 역대 통치자들은 조선과 조선주민들을 희생양으로 상정해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를 건드려 한국사람들에게 적색공포를 조장함으로써 통치해 온 것이다. 적색공포는 또 생활속에 내면화되면서 냉전체제가 강요한 동족간의 상호 적대감에 휩싸인 삶의 방식을 만들어 왔다. 이 마음속의 차디찬 휴전선이 걷힐 때 심리적·정서적 통일기반이 조성될 것이다.
(오수성 전남대교수)

빨갱이 딱지붙여 마녀재판

서양의 마녀재판과 한국의 국가보안법 현상

지금껏 우리사회에는 중세 유럽을 휘쓸었던 마녀현상이 다른 형태로 재현돼 왔다. 다름아니라 사상과 신념 때문에 국보법에 의해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비극적 운명을 살아 온 사람들을 둘러싼 사회현상들이 그것이다.

국보법에 의해 비롯된 제반 사회현상은 중세 유럽의 마녀재판과 너무도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국보법이든 마녀재판이든 체제를 부정 전복하려 했다해서 ‘중죄’로 인식된 점과 이에 따라 엄청난 희생과 피해를 초래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재판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자백을 얻어내는 방법으로 고문이 상용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사관의 협박이 더해지며 결국 재판과정에서 진실을 밝힌다거나 정당한 판결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마녀가 이단 심문소라는 특정한 기구에서 무자비한 조사과정을 거치듯 국보법 피의자의 경우 안기부가 수사는 물론 재판까지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마녀나 국보법 피의자들이나 ‘중죄인’으로 중형을 선고받고(마녀는 주로 화형에 처했지만) 장기복역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같은 처벌을 받는 계층이 주로 약자 계층(마녀는 소녀나 노년 여성)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결국 광기와 광란의 시대는 희생자를 낳게 마련이다. 집단적 히스테리에 빠진 사회와 국가는 그 구성원을 해칠 수밖에 없으며 바로 서양의 마녀재판과 우리의 국가보안법이 이를 증명한다.
(박원순 변호사)

사회복지 확대에 걸림돌

냉전, 국가보안법, 사회복지의 저발전

한반도의 냉전체제는 한국의 국보법을 낳았고 국보법은 냉전을 강화, 지탱해 왔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은 사회복지의 확대에 큰 걸림돌이 돼왔다. 우선 재정적 측면에서 볼 때 한반도의 냉전체제는 남북간의 군비경쟁을 유발시켜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한 국방비 부담을 수십년간 지속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국방비의 과도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사회복지비에 투여될 수 있는 재정을 극도로 제약했다.

6·25전쟁이후 한국에서 생산된 경제잉여의 너무 많은 부분이 군사비로 투여돼 사회복지 등과 관련된 예산은 만성적으로 제약돼 왔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냉전체제는 한국에서 사회복지가 성장할 수 있는 이념적 토대를 제거하는 기능을 했다. 실례로 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의료보험을 도입하자는 주장조차 매우 볼온시됐다.

그밖에 냉전체제는 한국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적 사회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박탈해 버렸다. 노동운동의 활성화,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그리고 결국은 사회복지의 확대라는 경로를 40년 가까이 차단당해 왔다.

국보법 문제의 해결은 냉전의 벽을 결정적으로 허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로써 얻어질 냉전적 발상의 종식은 또 방위비 감축, 사회복지 이데올로기 확산 등 사회복지 향상의 계기들을 제공할 것이다.
(김연명 상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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