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씨의 비자금 폭로로 전국이 시끄러운 와중에 부여에서는 무장간첩 사건이 터져나와 국민을 한편으로는 불안에 빠뜨리고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하게 했다. 국민은 조선(북한) 정찰병 사살 사건에 이어서 무장간첩 사건이 터져나오자 혹시 안보의식을 건드려 국면을 전환해보려는 기도가 아닌가하는 ‘엉뚱한’ 의혹마저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KBS <일요스페셜>은 일본 오사카 아사히 방송에서 제작한 <보도스페셜― 어둠의 파도에서, 조선발 대남공작> 을 수입 방송한다. KBS가 붙인 제목은 ‘어둠을 넘어서’.

이 프로그램은 조선이 왜 간첩을 남파하는가에 대한 분석을 위해 제작된 프로그램이지만 보도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휴먼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하다. 박춘선(58)이란 재일교포를 둘러싸고 벌어진 가족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의 오빠는 60년대 북송선을 타고 조선에 입국했지만 85년에 조선당국으로 부터 사형당한다. 그런데 그 원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박씨에게 있었다. 박씨는 73년 재일교포 신광수씨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신씨는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공작원이었다. 박씨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신씨와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신씨는 일본에서 국가기밀을 입수해 본국에 보고하기도 하고 남한에도 공작원을 보내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등 간첩으로서의 임무를 계속 수행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상당수의 일본인을 납치해서 조선으로 보내기도 한다. 그는 85년 남한에 직접 잠입하지만 곧 안기부에 체포되고 현재 무기수로 복역중이다.

신씨는 일본을 떠나기 전 공작금 3백만엔을 박씨에게 맡겨놓았다. 그돈이 공작금임을 알턱이 없는 박씨는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준다. 신씨가 체포되자 조선에서는 이 공작금의 회수를 위해 노력하는데 돈을 빌려간 사람이 행방불명이 되면서 박씨는 그 돈을 갚을 길이 막막해진다. 결국 신씨가 체포된지 두달 후 박씨의 오빠는 조선에서 사형을 당한다.

‘어둠을 넘어서’는 박춘선씨의 가족사를 통해 조선이 왜 계속해서 간첩을 남파하는지 접근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조선이 간첩을 보내는 이유를 대남혁명보다는 대내적인 정권안보차원에서 찾는다. 대남혁명이라는 혁명과업을 인민에게 강조하지 않으면 조선의 정권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기 때문에 조선은 끊임없이 간첩을 남파한다는 분석이다.

남북간에 벌어지는 정보전쟁은 가장 첨예한 대결이다. 따라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이 냉전의식을 고취하는 결과만 초래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이에 대해 더빙제작을 맡은 전용길 프로듀서는 간첩을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간첩이라는 객관적인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남북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중에 하나를 빠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냉전의식 때문에 이런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면 스스로 남북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이 제작진의 기획의도이기도 하다.

결국 객관적인 이해를 위해 또 하나의 비판적인 접근을 해야하는 과제가 시청자에게 주어져있는 셈이다. 러닝타임 72분의 ‘어둠을 넘어서’는 5일 7시 40분 모든 내용이 편집없이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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