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시민들은 ‘고속철도는 경주 도심통과가 아니라 시 외곽을 지나며, 문화재가 가장 적은 서천을 따라 지나간다’ 면서 학자와 언론이 여론재판을 했다고 흥분했다. 만약 고속철도가 경주 문화재를 훼손한다면 제일 먼저 경주 시민들이 나서서 반대했을 것이라고 했다.”

<월간조선>11월호에 김용삼 기자가 쓴 ‘경주 시민들의 여론은 무시됐다’는 고속철도 관련 기사의 서문이다.

김용삼 기자는 이 기사에서 △경부고속철도는 도심통과가 아니라 외곽을 통과하며 △고속철도가 통과하는 서천(형산강 지류) 일대는 문화재가 거의 없고 △경주 경마장 예정지 일대는 매장품이 거의 없는 민묘(서민층 무덤)에 불과한데 △많은 기자들이 경주 현지 취재도 하지 않고 일방적인 기사를 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기사야말로 짧은 현지취재로 만들어낸 억지 기사에 불과하다.

김용삼 기자의 기사는 “현 노선은 경주 도심이 아니라 외곽을 통과하며, 고속철도가 통과하는 서천 일대는 문화재가 거의 없다”(이원식 경주시장의 말을 인용)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경주 도심이란 현재 시가지로 개발된 일부 상업지역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다.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적 경관을 기준으로 볼 때 소금강산(경주국립공원 소금강지구), 옥녀봉(화랑지구), 선도산(선악지구), 남산(남산지구) 등으로 둘러싸인 경주 분지 전체가 시가지인 것이다. 건설교통부의 원 계획대로라면 교각 높이 16m(방호벽 포함20m), 길이7km의 거대한 장벽이 경주 시가지 입구를 완전히 가로막고 남산 북녘들에 인구 2만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신시가지가 들어설 판이었다.

더욱이 서천(형산강 지류) 일대에서는 지난 93년 영남대 박물관 지표조사에서 많은 문화재들이 보고되었고, 신창수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관도 “구릉과 강이 만나는 층적평야 지대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선사시대 유적지들이 산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용삼 기자는 또 김원주 경주박물관회장의 말을 빌려 “경마장 부지 일대는 유적이 별로 없는 곳이며, 발굴해 봐야 매장품이 거의 없는 민묘(서민층 무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주문화재연구소의 지표조사 결과 경마장 부지에서는 전체 예정지 29만여평의 30%에 이르는 면적에 △고분군 7개소 △토기 가마터 2개소 △유물산포지 1개소가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경마장 예정지 바로 북쪽에는 현재까지 알려진 요지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물천리요지군’(산라시대 경주에 토기를 공급하던 가마터)이 자리한다. 경마장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하면 이 요지군의 파괴는 필연적이다. 계명대학교 김종철 교수는 “이 일대는 지증왕, 법흥왕 시대 신라 문화의 생생한 증거들이므로 경마장 부지로는 부적당 하다”고 말하고 있다. 유적지 중요도는 (도굴꾼이 아니라면) 매장품을 기준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김원주 회장이 위와 같은 논조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원주 회장은 “큰 유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 일대는 신라 토기 가마터의 역사가 살아있는 지역인 만큼 경마장은 경주 서남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 기자가 내 말을 거두절미하고 제멋대로 썼다”고 어이없어 했다.

김용삼 기자는 이난영 전 경주박물관장(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와의 인터뷰도 자의적으로 각색, 인용했다. 이 기사에는 “이난영 교수도 ‘(유네스코 지정 도시인)교토에 경마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교수는 ‘고속철도가 서천을 따라 지나간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면서 ‘그렇다면 학자들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고 적혀있다.

필자가 이난영 교수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용삼 기자는 “교토에도 경마장이 있지 않은가?”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이 교수는 “잠시 수도 역할을 했던 교토와 천년 고도경주는 차원이 다르다. 더구나 교토 경마장은 20km 이상 떨어진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건설시기도 1900년대 초,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을 때였다. 지금은 교토역사 확장도 시민 반대로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교수는 고속철도 문제에 대해서도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직선 구간에 경주가 위치한다고 해도 우회를 해야 될 판에, 일부러 우회해서 경주를 통과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했다.

“많은 기자들이 경주 현지 취재도 하지 않고 일방적인 기사를 썼다”는 김용삼 기자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지난 10월초 <한겨레신문> 문화부 안영진 기자는 경부고속철도 경주 우회를 주장하며 열흘간 단식기도를 했던 불국사 설조 스님을 현지 인터뷰했다. 그는 “경주 시민들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인 기사를 썼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수많은 경주 시민들의 의견이 일부 상공인들의 목소리 높은 주장에 짓눌려 있다”고 말했다.

9월 중순 고속철도 경주구간 문제를 집중 보도했던 <경향신문> 문화1부 최정훈 기자도 “그 기사를 위해 경주 현지 취재만 두번 다녀왔다”며 “김용삼 기자의 보도는 ‘기존 보도 내용을 뒤집는다’는 <월간조선>의 편집방침에 충실한 기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경주 YMCA의 박병종 총무는 “사실 여론 재판은 언론보다 일부 지역유지들이 한셈”이라며 “그나마 문화재를 사랑하는 경주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런 여론을 애써 외면하고 일부 상공인들의 주장만을 담은 의도를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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