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방송 기자·PD 등 5명은 FM개국을 준비하면서 지난달 8일부터 22일까지 유럽의 공영방송사를 둘러보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의 공영방송들의 운영실태와 방송체제를 보고 온 민경중기자의 글을 싣는다.

유럽에서 라디오는 결코 찬밥신세가 아니다. 유럽의 라디오방송들은 미디어로서 한 분야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영상분야에서의 뉴미디어 출현과 관계없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음성매체로서의 고유한 장점인 속보성과 간편성이라는 이점 때문이다.

프랑스는 라디오가 오히려 TV의 영향력을 능가하고 있다. 공영방송인 라디오 프랑스는 France Inter(시사), France Info(뉴스) 등 5개 채널을 갖고 있는데 모두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고 차별화된 편성전략을 갖고 있다. 프랑스의 라디오청취율은 일반적 상상을 뛰어 넘는다.

아침 7시부터 9시 사이에는 약 50.4%의 파리시민이 라디오를 듣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 사회의 지식인들일수록 신뢰도면에서 라디오를 TV보다 더 우선순위에 둔다고 한다.

그 이유는 TV의 경우 카메라맨이 강요하는 화면만을 봐야 되지만 라디오는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적다는 점을 들고 있다. 예를 들어 걸프전 당시 너무 TV가 실상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바람에 오히려 일반 시청자들이 혐오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도 라디오의 위력은 강력하다. 95년 현재 영국의 라디오 방송수는 약 1백80개나 된다. 공영방송인 영국 BBC라디오는 모두 5개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라디오 매체가 TV매체에 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라디오 매체인 상업적 음악방송의 대거 출현으로 이같은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BC는 청취율 지상주의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전통을 중시하는 그들의 성격처럼 공영방송 정신을 고집스레 지키고 있다. 예를 들어 시사중심으로 종합편성을 하고 있는 Radio 4의 는 아침의 TV보다 더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에서 라디오 방송사들이 굳건히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차별화된 편성이다. 채널별로 뉴스와 음악, 시사, 스포츠 등으로 성격을 분명히 한다는 점이다. 또한 청취자들을 방송에 적극 참여시킴으로써 여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독일 WDR의 경우는 대형 오픈 중계차로 거리에서 직접 시민들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고정 편성하고 있다. 청취자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유럽 공영방송들은 방송을 어떻게 하면 잘 할 것인가 하는데 최우선적 가치를 두고 조직을 운용한다. 즉 취재나 제작의 행위가 우리의 경우처럼 철저하게 계급조직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팀웍 위주로 팀장의 책임하에 이뤄지고 있는 점이다.

특히 라디오의 경우 라디오 특성에 맞는 조직을 갖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지난 12월 15일 CBS FM(채널 93.9MHz)이 개국함에 따라 서울에서는 모두 7개의 AM과 11개의 FM채널이 경쟁을 하게 됐다.

유럽의 공영라디오를 살펴본 것처럼 우리 라디오도 이제는 TV매체나 신문매체를 쫓아가기 보다는 차별화된 라디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청취자를 공략하려는 전략변화가 필요하다. KBS라디오가 정보전문채널 중심으로, CBS가 뉴스, 시사중심으로 특성화한 것은 그런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라디오의 르네상스시대가 다시 부활되기 위해서는 더욱 더 채널의 특성화와 전문화 그리고 고급화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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