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 1995년 10월 21일
△장소 : 21C프론티어회의실
△사회 : 원성묵(21C프론티어 사무국장)
△참석자 : 정근원(미래영상연구소장)
조현욱(서울대지역종합연구소 연구원)
정희섭(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기획실장)
김형준(바른정보대표)
손형국(세계일보 과학부기자)
△정리 : 강을영기자

사회 : <미디어 오늘>과 <21C 프론티어>는 ‘뉴미디어와 미래사회’라는 주제로 16회에 걸쳐 뉴미디어 시대의 전개와 관련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이같은 기획 연재의 마지막 순서로 그동안 집필에 참여하셨던 분들을 모시고 좌담자리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그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변화의 양상들은 상당히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형성하고 일궈가고 있는지 총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념 정립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 같은데요.

개념의 단순화 경계해야

△정근원 : 그러나 개념의 지나친 단순화는 경계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단순화할 경우 현상들을 모두 포괄하지 못하게 됩니다. 뉴미디어는 멀티미디어의 발전과 일련의 관계를 맺으면서 진행되고 있는데 멀티미디어가 갖고 있는 다양성, 즉 다매체적 특성이 고려돼야 합니다. 또한 뉴미디어는 통신과 영상 그리고 정보체계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들을 총괄할 수 있는 광의적인 개념이 필요한데 아직 전세계적으로도 그 개념 정립이 확연하게 이뤄져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직은 진행형의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조현욱 : 뉴미디어의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서 주로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로 분류하여 그 각각의 특징을 지적함으로써 접근하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올드미디어라면 일방향적인 매체들 즉 신문이나 기존의 TV,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를 말합니다. 반면 뉴미디어라면 기술의 변화로 야기된 소통 형식의 변화로써 일련의 흐름 또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올드미디어 다음에 뉴미디어라는 순차적 개념정립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뉴미디어는 올드미디어가 가졌던 기능들 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아주 새로운 차원의 흐름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희섭 : 지금까지 새로운 미디어들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 눈부심에 또는 그 위력에 눌려서 소동들을 벌여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뉴미디어를 말할 때 또 다른 미디어라고 하지 않고 뉴미디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예전과 다른 문명사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소통방식 그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와 다른 대인관계를 형성시킬 것이며 서서히 기존권위와 전통이 도전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술 영역에서도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예술개념 자체가 혼란스러워지고 있으며 예술가들이 그 영역으로 선뜻 뛰어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 : 뉴미디어를 무어라고 정의내리기 어렵다는 것은 뉴미디어라는 것이 아직은 ‘진행형’이란 것과 연관돼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뉴미디어를 이끌어내는 추동력이 과연 무엇인가, 뉴미디어가 실제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영역은 어떤 곳인지를 짚어 보면 뉴미디어의 특성과 실체에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기업체가 주도세력의 핵심

조현욱: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얘기를 했는데 뉴미디어는 올드미디어와 다르게 쌍방향성과 탈대량화·비동시성·상호작용성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데이터베이스의 공급은 사실 뉴미디어라고 할 수가 없고 예를 들어 바른 정보의 참세상 BBS처럼 여러사람들이 참여하고 상호 작용하는 것들이 뉴미디어에 근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뉴미디어의 혁명은 디지탈혁명과 광섬유혁명 그리고 퍼스널컴퓨터혁명으로 그 물리적 기초가 다져진 것이므로 뉴미디어의 모체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러한 기술 개발은 기업체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사실상 뉴미디어를 주도하는 세력 또한 기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형준 : 기술은 발전돼 왔고 앞으로도 끝없이 발전할 것입니다. 이런 사실 자체를 일단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우리들이 접근해야 할 바는 그것으로부터 야기되는 하부구조와 기업생산과정, 문화 향유의 방식, 정치과정 및 공간의 변화들을 포착하는 것 즉 뉴미디어의 특징 뿐만아니라 그것이 미치는 사회학적 변이들을 이끌어내고 방향성들을 제시해나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손형국 : 93, 94년을 통해서 둠(DOOM)이라는 게임이 엄청난 선풍을 일으켰는데 그 게임의 특징은 지금까지의 2차원적 게임공간이 3차원으로 확대됐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게임에 들어가서 직접 참여하고 있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이전과 아주 다른 특성인데 여기서 버츄얼 리얼리티(가상현실)의 논의도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게임이 세명의 젊은이들이 세운 아이디소프트웨어라는 작은 회사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인데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이 뉴미디어의 추동력이라는 것을 잊지말았으면 하는 점입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젊은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기는 커녕 오히려 제한하는 것들이어서 안타깝습니다.

정근원 : 게임을 들어 뉴미디어의 특성 중 한 측면을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퍼스널컴퓨터를 이용한 통신이나 3차원적 게임등에서 우리는 ‘개인의 참여’라는 큰 변화에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들이 제약받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됐으며 이러한 사실은 권력관계의 변화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게임들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개인이 완성해 가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돼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산업 자체가 개인의 취향에 주목하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일례라 하겠습니다.

사회 : 뉴미디어는 앞에서 여러분들이 얘기했듯이 대인관계나 사회권력관계에까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시각들은 다양한데 론머맨이나 블레이드 러너, 데몰리션맨 등의 헐리우드영화들을 보면 대부분이 뉴미디어의 미래사회를 디스토피아로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데몰리션맨 같은 영화에서는 정보권력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는데 뉴미디어의 수용과정에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들과 한국 사회의 현황들에 대해 얘기를 더 진행시켜봤으면 하는데요.

김형준 : 앞에서 얘기했던 사용자인 개인의 참여도 증가나 가능성에 대한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뉴미디어를 이용한 예술을 한다고 할 때 설계나 디자인을 하는 것은 소수이며 나머지는 기능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단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 뉴미디어를 추동하는 것이 너무나 상업적 논리를 따라가고 있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기업적 논리는 뉴미디어의 핵심적 부분에 개인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 배타적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또 뉴미디어의 풍부함을 누릴 수 있는 계층이 상당히 한정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손형국 : CD롬 타이틀이 앞으로 더 대중화되어갈 추세인데 사실 CD롬의 그 방대한 정보가 다 유용한가는 의심이 갑니다. 어떤 이들은 CD롬의 핵심정보는 10%정도 뿐이며 그것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그 효용이 치중될 수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국소수술 등 활용의 측면에서 뉴미디어의 잠재성이 무척 큰 것만은 사실입니다.

사회권력 변화가져와

정희섭 : 아까 말씀드렸지만 예술계에서는 뉴미디어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들에게는 뉴미디어가 향수를 더 자극시키고 있는 반면 과감하게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계속 향수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조현욱 : 정보를 소유하고 거기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할 것입니다. 데몰리션맨이라는 영화는 억압과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 권력의 실체를 시사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뉴미디어에서 통신의 모체는 모뎀인데 그 모뎀을 세계로 나아가는 문으로 봐야할 지 또는 빅 브라더의 감시의 눈으로 봐야 할 지, 다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김형준 : 소유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통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실적 불평등도 누가 통제권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전자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도 통제입니다. 무엇보다 개인 정보가 보호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개인 정보를 전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ID카드가 우려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정근원 : 버츄얼 리얼리티는 영상과 관계된 것인데 새로운 공간(가상공간)이 생기고 사람들이 그 속에 들어가 또 다른 자신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인간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던져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버츄얼 리얼리티 공간속에서 오감과 의식을 갖은 어떤 것이 실재의 나와 별개로 존재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철학적인 문제가 제기되게 됩니다. 뉴미디어의 등장은 또한 윤리개념에도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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