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은 해외언론에서도 연일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총체적 비리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번 사건에 대한 해외언론의 시각은 ‘과연 이러한 부패구조가 얼마나 제대로 파헤져질 수 있는지’에 모아지고 있다.

뿌리깊은 뇌물 수수관행에 대한 조명에서부터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선거자금 지원 의혹의 규명 여부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특히 10월 30일자 기사(과거에는 고분고분하던 언론이 전직 대통령에게 대들다:Once - tame media turn on ex - president)에서 이번 사건을 다루는 한국언론의 보도태도를 과거 보도 태도와 견주어 한국언론의 독립성이 평가받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해설 기사를 내보내 관심을 끌었다. 해외언론의 눈에 비친 한국언론의 면모를 단적으로 시사해주는 이 기사 내용을 전재한다.
<편집자주>


전임대통령 노태우씨와 6백50만 달러의 불법 정치자금이 관련된 부패스캔들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과거에는 고분고분하던 한국의 언론들이 피를 요구하며 짖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언론들이 요란하게 짖는 것만큼 집요하게 부패 스캔들을 추적 보도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한국의 신문들과 텔레비전은 전통적으론 권력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이미 약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한 그들을 비판하고 조사하는 일을 피해왔다. 노태우씨가 금요일에 자신이 불법적인 자금을 모았다고 자백한 이후에 ─ 동아일보는 이것을 ‘국가적 수치’라고 묘사했다─ 그에 대한 사냥이 개시됐다.

대부분의 주요신문들은 노태우씨가 그의 전임자인 전두환씨에게 가해졌던 것보다 더 심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두환씨는 그의 부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88년에 백담사에 유배됐다.
“국민들은 국가에 대한 노태우씨의 사과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지난 10년 동안 그들이 이전 대통령에게 배신 당한 두번째 경우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국일보는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노태우씨에게 대통령 면책특권이 적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점점 지지를 받고 있으며, 김영삼대통령이 1993년 2월에 대통령이 된 이후에 정부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한 사실을 주목했다.

그러나 비록 언론이 견고한 정치적 부패를 폭로하기 시작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주먹을 움츠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노태우씨 집권 당시의 무기조달계약과 관련된 뇌물수수 의혹(율곡비리)에 대한 수사가 있었지만 신문들은 그 스캔들에서 노씨가 담당했을 역할을 조사하는 일을 꺼렸다.

어떤 분석가들은 김영삼 정권의 압력 때문에 언론이 그 문제를 다루는 데에 조심스러웠다고 말한다. 이는 집권당의 가장 큰 지분을 조종하는 노씨를 김영삼 정권이 따돌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론이 노씨를 조사하지 않는 것은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지난주에 비자금이 드러난 이후 노씨에게 상처를 입힐 많은 증거를 언론이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발표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봇물이 터졌다. 심지어 정부에 밀착되어 있는 공영방송 KBS조차도 노씨의 과거 행적을 공격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노씨에 대한 언론의 신랄한 공격과 추궁은 많은 언론인들이, 만약 뇌물수수로 기소될 경우 언론인들 또한 정치적으로 연루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활동한 것에 대한 좌절과 죄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번 경우는 이전의 국가 수반에 대해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는 신랄한 공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독립성에 대한 참된 시험은 이제 언론이 김영삼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들을 포함한 정치적 ‘검은 돈’에 대해서 얼마나 공격적으로 추적하고 폭로하느냐에 달려 있다.
언론이 비록 이전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적 지배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정치세력과의 밀착은 객관적 보도를 방해해 왔다.

한국에서 언론은 엘리트 직종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권력층의 견해를 대중에게 전달하며 유교적 방식으로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그들의 일차적 임무라고 믿고 있다. 언론인들이 자주 정계와 관계에 진출하는 현상이 이런 태도를 강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언론은 그들이 지금 노씨의 경우에 대하여 공격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부패체계의 일부가 돼왔다. 한국신문협회가 최근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호적인 기사에 대한 대가로 현금이 든 봉투를 돌리는 이른바 촌지라는 이름의 관행이 아직도 널리 퍼져있다.

고려대 신방과 오택섭교수는 이런 압력이 언론인들에게 (부패 고발)의지등의 약화를 초래하고 심리적인 자율규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은 최초의 문민대통령인 김영삼 정권시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노골적이 되고 있다. 광범위한 반부패운동이 압력에 의해 시작됐다. 예를 들면, 다른 수치스러운 국가 지도자들의 운명에 대한 문화방송의 보고는 교묘하게도 루마니아 대통령 차우세스쿠의 처형 장면으로 끝났다.

노씨의 비자금 스캔들은 한국에서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사건이 정국 주도권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하여 정부가 그 발표를 억제하고자 하더라도 이제 때는 너무 늦었다.
언론은 오랜동안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씨가 1992년의 대선 때 노태우씨로부터 20억원을 받았다고 고백한 이후에 그를 비난하고 있다. <코리아 타임스>지는 “김대중씨는 전생애를 민주주의의 회복에 헌신한 야당 지도자가 어떻게 그가 대항하여 싸운 정권으로부터 검은 돈을 받기위하여 그의 정치적 원칙을 타협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목표는 김영삼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야당은 김대통령이 1992년 선거때 노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비자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집권당은 대통령 선거기간에 사용된 자금출처를 밝히기를 거부했다.

중앙일보의 한 신문만화는 울먹이는 노씨가 고백할 때에 유엔 창설 50주년 기념식에서 급히 귀국하는 걱정스러운 모습의 김대통령을 묘사했다.
어제 신문 사설들은 김대통령 선거자금의 전모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언론이 이 문제를 계속 추적해 나갈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만약 한국언론이 그럴수만 있다면 20년전 워터게이트사건이 미국 언론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됐듯이 노씨의 비자금 스캔들은 한국언론의 새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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