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반.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게 만든 크고 둥근 상을 말한다. 높은 분과 겸상하지 않는 인습과 달리 두리반에서는 머슴이나 여성, 아이들까지 둥그렇게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서울 동교동삼거리에도 두리반이 있다. 30평 남짓한 칼국수집이다.

안종려·유채림 씨 부부가 국수집을 연 것은 2005년 3월. 이들이 처음 두리반이라 이름 붙인 것도 원탁의 의미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네모난 상은 4명이 앉아서 먹을 수 있지만 원탁은 그보다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다. 집사람이 충청도 공주 출신인데 그쪽 말로 원탁을 두레반이라고 한다. 그걸 표준어로 쓴 것이 두리반이다.”

   
     
 ▲ 박김형준 제공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도 한 남편 유채림 씨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 1일 저녁 찾아간 두리반은 위태로워 보였다. 공사용 철제펜스가 둘러쳐진 외형은 인근 대학가의 싱그러운 분위기와 동떨어져 보였다. 두리반 내부 역시 단전으로 알전구 몇 개만 반짝일 뿐 어둑어둑했다. 이런 곳에서 부부는 1년 가까이 철거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두리반에 어떤 일이 있는 걸까?

▷두리반은 어떻게 ‘작은 용산’이 됐나=지난 2006년 3월 서울 마포구청이 동교동 167번지 일대에 대한 지구단위 계획을 발표한 것이 발단이 됐다. 재건축 구역으로 지정된 것이다. 시공사 GS건설이 남전DNC를 앞세워 땅을 매입하고 난 뒤 세입자들에게 이주 명령이 떨어졌다. 2007년 12월이다.

세입자 11세대가 대책위를 꾸리고 적절한 보상 등을 요구하며 소송을 벌였지만 ‘지구단위계획’에 포함된 곳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도, 도시및주거환경 정비법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결만 돌아왔다. 결국 라틴댄스학원을 필두로 르꼬르지 옷가게, 후닥식당 등이 1000만 원을 밑도는 이사비만 받은 채 차례로 이곳을 등졌다. 현재 두리반만 남은 상태다.

1985년 목동, 1986년 상계동에서 벌어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유채림씨는 설명한다. “라틴댄스 학원의 경우 영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유리를 깨뜨리고 ‘접근 금지’라고 락커로 써놓았는데 돈이고 보상이고 간에 그냥 뜰 수밖에 없었다.”

이사비 300만원만 받고 떠날 수 없다고 판단한 두리반 역시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끔찍한 일을 당했다. 유채림 씨의 회고다. 

“아무런 통지도 없이 용역 30여 명이 들이닥쳐 주방장과 주방보조, 우리 부부를 구석으로 몰아서 포위하고 식당 집기를 다 들어냈다. 짐은 패대기쳐 버리고…. 한동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바람에 무엇이 조금만 흔들려도 용역이 왔나보다 하는 공포감 때문에….”

집기를 들어낸 사람들은 전기도 끊어놓고 사라졌다.

사람들은 1년여 전 용산의 기시감을 느끼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채림 씨 부부 역시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1월 초 작가회의 대변인이 와서 그러데요. 노동자는 어떻게 싸우나요? 노동자 방식으로 싸우겠죠. 농민은 어떻게 싸우나요? 농민들 방식으로 싸우겠죠. 작가는 어떻게 싸우나요?”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유채림 씨는 홍두깨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바들바들 떨기만 했지 무얼 할 생각을 못했다”면서 “르포작가가 쓴다고 해도 어차피 작가의 시선으로 한번 걸러진 것을 쓰게 되는데 나는 체험을 쓸 수 있으니 작가로서 기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왜 두리반에 주목하는가=
그가 기고한 글을 보고 예술인들이 모여들었다. 용산의 아픔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게 이들이 주장하는 바다. ‘작은 용산’이라고 불리면서도 두리반이 용산과 궁극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혹자는 두리반이 저항을 모토한 서울의 ‘우드스탁’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두리반에서는 일주일에 4일 동안 문화제가 열린다. 월요일에는 가수 엄보컬 김선수의 하늘지붕음악회, 화요일에는 다큐멘터리 제작집단 ‘푸른영상’의 다큐멘터리영화 상영 및 감독과의 대화, 금요일에는 인디밴드가 펼치는 칼국수음악회, 토요일에는 자립음악회가 15~40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다. 소설가 최경주 씨가 적시했듯 이들은 ‘왜’라는 의문을 던지며 공연을 펼친다.

1980년대 목동과 상계동, 그리고 2009년 용산이 그러했듯 철거 반대 투쟁은 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에서 터지곤 한다. GS건설이 거대자본을 상징한다면 두리반은  영세한 세입자를 대표한다. 세입자는 언제나 투기자본, 시장자본에 쫓겨나는 신세였다. 그런 ‘추방의 역사’가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이 두리반에 모이는 이유일 터이다.

공연 뿐 아니라 두리반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유한주 다큐멘터리 감독을 비롯해 하자센터 활동가, 대학생들 10여 명이 돌아가며 단전으로 침침하고 싸늘한 공간에서 투쟁의 기록을 쌓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생명을 누리려는 게 아니라 그저 지키고 싶다는 것.

안종려 씨는  “내 가게를 이렇게 어이없게 뺏기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다시 가게를 낼 수 있을 때까지 여기서 꼼짝 않고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억지’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동안 생계를 유지해왔던 삶터에서 쫓겨나야 하는 사람에게는 ‘주는 대로 받고 나가라’는 것만큼 억지스러운 일도 없어 보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