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이 대선 자금 공개를 거부하고 노태우씨로부터의 대선 자금 수수를 부인하고 나섰다. 언론은 이제 공이 검찰로 넘어간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대선자금 공개를 비롯한 현정권과 관련된 모든 의혹이 김대통령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던 그동안의 논조에 비교해보면 일관성이 부족하다.

대통령이 부인한 것을 검찰에서 ‘철저하게 법대로’ 조사해 뒤집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언론의 그같은 입장은 이해될 만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본다.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는 검찰이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내세우지 않은 권력형 비리·의혹 수사를 본 적이 없으며 또한 철저하게 발본적으로 진상을 규명해낸 권력형 비리·의혹 수사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검찰에 공이 넘어 갔다는 얘기는 ‘물건너갔다’는 뜻과 다름없는 것 아닐까. 정치적 수습에 종속된 법적 정리 수순은 그다지 낯설지 않은 우리의 ‘관행’이었다.

만약 김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같은 냉소적인 표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이 마땅히 제기해야 할 의문점을 제기하지 않은 채 공이 검찰로 넘어갔다는 식의 보도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노태우씨의 비리와 관련해서 우리 언론은 제기할 수 있는 모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확인이 안된 ‘설’의 보도가 난무하는 최근의 비자금 관련 보도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비록 소문일지라도 국민의 입장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의혹이라면 적극적으로 기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부분적인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그만큼 진실규명이 중요하다는 여론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김대통령의 거부 자세와 부인 발언에 대해서 우리 언론은 기존의 보도 태도와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언론이 검찰이나 권력의 핵심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들이 가질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의혹을 분명하게 제기하고 이를 토대로 강력한 여론 형성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물론 이는 선동과는 다르다.

당대표가 받았다고 얘기했음에도 총재인 대통령이 나는 모른다고 얘기하는 것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노태우씨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싫어했다는 드문 표현까지 동원해 자신과의 무관함을 주장하는 김대통령이 지난해 검찰의 노태우씨 비자금 조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보통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언론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같은 의혹을 과감하게 파헤쳐주기를 요청한다. 보통사람들의 여론을 무기삼아 언론이 국민편에 서서 권력의 눈치보는 일 없이 취재 보도해 주기를 바란다. 쉽지 않은 주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어떻게 보면 언론에 대한 물정모르는 과잉기대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같이 요청하는 것은 사실상 이 방법이 아니면 비자금과 관련된 총체적 진실이 밝혀질 다른 방법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