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3일 KBS가 보도한 ‘서울시 휘장은 일제잔재’(KBS의 이 보도는 지난 10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편집자)라는 주장에 대해 이견을 제기한다.

이 보도는 일반인들과 서울시 당국에 ‘역사의식’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바람직한 면도 있었으나 보도된 내용중에는 사실에 입각한 역사적 문헌고찰과 검토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보도 이후로 서울시측은 휘장을 새로 제정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기회를 통해 현 서울시 휘장의 제정과정과 일제잔재 여부를 검토해보고 아울러 서울시 당국에 몇가지 의견을 제시코자 한다.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일제잔재란 단어의 의미는 대부분 포괄적으로는 ‘일제시대의 찌꺼기’정도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무력통치하면서 남긴 것으로 일본혼이 배어있는 유·무형의 부정적인 찌꺼기’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따라서 같은 건물일지라도 조선통치의 총본산이었던 총독부 건물과 단순히 시기적으로 일제때 지어진 일본식 민가를 같은 반열에 놓고 볼 수는 없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 서울시의 휘장을 일제잔재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인 동시에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현 서울시 휘장은 1947년 4월 1일 서울시 고시 제17호(시 휘장 설정의 건)로 생겨난 것인데 이는 일제당시 ‘경성부’가 해방후 ‘서울시’로 개명됨에 따라 새로운 이미지 부각을 위해 서울시 당국이 일반인 공모를 통해 제정한 것이다.

당시 시 당국의 고시내용에 따르면 이 휘장이 담고 있는 의미는 ‘가운데 부분의 원은 서울시가를 나타낸 것이고 외각의 8각은 서울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남산, 와우산,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무학봉, 응봉 등 8악(岳)을 보석의 섬광형태로 상징한 것인데 이는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수도의 찬연함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보도 당사자인 박태서기자가 현 서울시 휘장의 의미와 근거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는 일단 과문한 탓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현 서울시 휘장이 문제가 된 것은 그 모양이 일제잔재의 상징물인 총독부 건물의 복도 등에 있는 문양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다음 몇가지 점에서 일제잔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첫째, 이 문양은 이번 보도의 주장대로 총독부를 상징하는 ‘총독부 문양’이 아니라 단순한 장식용 문양이라는 점이다. 총독부를 상징하는 문양은 현 서울시 문양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오동나무꽃’문양이었는데 이는 일본의 세도가였던 풍신수길 가문의 문양을 모방한 것이다.

총독부 건물에 가보면 현 서울시 휘장과 비슷한 다양한 형태의 문양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이들은 모두 국산 대리석을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모두 건물장식용이었다. 이같은 문양은 현재까지도 건물바닥 장식용으로 더러 사용되고 있는데 몇년전에 준공된 서울역 민자역사의 바닥(서부역 입구쪽)에도 이같은 문양이 장식돼 있다.

둘째, 총독부 건물바닥에 있는 문양과 현 서울시 휘장은 엄격히 말해 다르다. 우선 현 서울시 휘장은 8각안에 원이 있고 또 원이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총독부 건물바닥에는 현 서울시 휘장과 똑같은 형태의 문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형태의 여러가지 문양이 있다.

현 서울시 휘장은 그런 여러 문양중의 하나일 뿐이며 외부의 8각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총독부 건물에 남이있는 형태와 같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일제잔재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문양형태를 ‘모방’한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서울시청과 총독부 건물은 모두 같은 해(1926년)에 건립됐는데 두 건물 모두에 유사한 형태의 문양이 남아있는 걸로 봐 이문양이 당시 건축장식의 유행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셋째, 현 서울시 휘장이 형태상 개운치않다고는 하나 분명히 해방후에 한국인이 만든 것인데다 이것이 ‘일본혼’을 담고 있다거나 일본식이 아닌 이상 이를 일제잔재와 결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현 서울시 휘장의 형태가 일본황실을 상징하는 ‘국화(菊花)’나 총독부를 상징한 ‘오동나무꽃’을 흉내낸 것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그러나 현 서울시의 휘장이 그같은 총독부 건물 곳곳에서 발견되는 문양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를 일제잔재라고 보는 견해는 논리의 비약일 뿐더러 그런 이유로 휘장을 교체해야된다면 이보다 앞서서 교체해야될 것들이 수도 없이 많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일제당시 경성부 청사였던 현 서울시청을 먼저 헐어야할 것이며 또 서울역에서 한강대교에 이르는 한강대로는 폐쇄하든지 아니면 도로공사를 다시해야한다. 왜냐하면 이 도로는 1906년 일제가 용산에 군부대를 주둔시키면서 군사용으로 만든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KBS의 보도이후 서울시는 휘장을 새로 제정키로 한 모양인데 서울시가 굳이 그렇게 하려한다면 그 발상은 차라리 이런데서 시작해야한다고 본다. 우선 서울시의 현 휘장은 현재 서울시의 상황과 맞지않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현 휘장 제정당시에는 8악(岳)이 비교적 선명했으나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훼손돼 8악이 제모습이 아니다.

따라서 아직도 8악을 서울의 상징으로 삼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현 휘장의 예술성이 시대감각은 물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상징하기에는 왠지 부적절해 보이며 특히 담고있는 의미도 그리 깊지 못하다는 점이다. 현 서울시 휘장은 단순히 서울시의 지리적인 모습을 형상화시킨 정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일제가 제정한 경서부의 휘장보다 못한 수준이다.

참고로 1926년 9월 경성부가 두번째로 제정한 경성부 휘장의 경우 현 서울시의 휘장보다는 예술성이나 의미면에서 단연 한 수 위로 보인다. 당시의 신문기사에 의하면 경성부는 이 휘장을 공표하면서 무려 6개항목에 걸쳐 이 휘장이 담고 있는 의미를 설명했는데 그 중 현대의 이상적인 도시구조인 방사상(放射狀)을 취한 점이라든지, 동서의 지역개발을 위해 휘장에서 가시적으로 동서를 튼 점 등은 꽤 사려깊은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최근에 출간한 졸저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를 참고바람).

결론적으로 말해 현시점에서 서울시의 휘장을 새로 제정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이유는 현 휘장이 일제잔재라서기 보단 위에서 언급한대로 시대상황에도 맞지않고 담긴 의미도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마땅하다.

따라서 이번에 새로 휘장을 제정한다면 시 당국은 충분한 자료조사와 미술·역사분야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해 시대감각에 어울리면서도 논란의 소지가 없는 독창적인 상징물을 제정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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