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 여름 이른바 ‘신군부’의 지시와 이들 지시를 확대 해석함으로써 정권 찬탈자에 대한 충성심을 표시하는 KBS 핵심간부들에 의해 일터를 쫓겨난 KBS직원들은 약 1백40명, 이 가운데 일부가 87년 6·29이후 밀어닥친 사회민주화의 영향으로 옛 직장으로 돌아왔다. 80년초 근무했던 일터로 복귀했으니까 얼핏보면 ‘복직’된 셈이다.

이들은 과연 80년 해직의 아픔을 씻고 원상 회복됐는가.

그러나 80년 해직기자들의 설레는 가슴을 안고 10여년만에 돌아온 직장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회사는 6·29이후 민주화 대세에 밀려 할 수없이 80년 해직자 특별인사규정을 만들어 그 틀 속에 해직자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 놓고 말았다. 이 특별인사규정은 당사자인 해직자와 전혀 협의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만든 것임은 두말 할 것 없다.

규정에 따라 입사 2년차나 기자생활 30년 고참이나 한결같이 그들은 89년 신입사원일 뿐이다. 보직, 급여, 후생 등 모든 처우에 있어서 지난 9년을 아예 고려하지 않고 책정된 복직 규정때문에 해직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80년 해직의 아픔을 씻기는 커녕 오히려 응어리를 더 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신군부의 강제해직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강요된 차별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 밖에 없는 고통은 정년을 앞둔 선배들에게 더욱 심해보였다.

재입사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기존 동료들에 비해 처지는 처우로 냉가슴을 안고 사는 선배들이 인사, 승진 발표가 있을 때마다 발표 명단을 애써 외면하는 안쓰런 모습을 해직의 아픔을 같이 하지 않은 사람들은 알아챌 수 없다.

KBS는 왜 80년 해직의 진상을 규명하지 않는가. 해직자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가.

상의하달의 일사불란한 조직에서 80년 광주에 다녀왔다든지, 제작거부라든지, 민주언론 수호를 외치는등 벗어나는 행동을 했다가는 이런 꼴이 된다는 교훈을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후배들을 순치시키기 위함인가.

지난 93년 아파트에 당첨돼 난생 처음으로 내집 마련의 꿈을 실현에 옮긴다는 기쁨을 맛본 기억이 새롭다. 거기에다 회사에서 무주택자에게 주택자금을 지원까지 해준다니 더 아니 좋을수가…. 그러나 대출 신청서류를 낼 때의 흥분도 잠시뿐 89년 신입사원이라서 신청금의 절반만 융자해준단다. 담당직원이 인사기록카드를 검토한 끝에 원칙에 따라 내린 결정이니 그를 탓할 수도 없었다.

지난 해까지는 해외연수 신청자격도 이와 똑같은 이유로 주어지지 않았다.

거대한 KBS에 근무하다 보면 이같은 차별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불거져 나온다. 해직자에 대한 불이익은 무슨 5·18특별법과 같은 거창한 규정이 없어도 회사가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KBS 인사권을 쥔 사람들이 80년 해직의 매듭을 풀 의향이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연못에 돌을 던지는 소년들이여! 그대들은 장난삼아 돌멩이를 던질지라도 연못안의 개구리에게는 생사가 달려있음을 알아달라. 회사의 인사권을 좌지우지하는 사람 가운데는 이런 사람도 있다고 한다. 즉 80년 해직자 가운데 몇몇은 진짜 ‘짤려할 사람’이라고.

무슨 얼토당토않는 궤변인가. 만의 하나 80년 해직자가 회사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치자. 그러나 처벌은 반드시 사규에 따라 합법적으로 집행돼야 한다. 80년 강제해직의 부당을 바로잡은 다음 모든 사원에 공평한 사규라는 잣대로 다시 재어 잘잘못을 가려야 할 일이다. 80년 해직의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 오히려 초점을 흐리는 그와 같은 망발은 해직자를 두번 짓밟는 것이다.

80년 언론인 대량 해직이후 언론사 통폐합과정에서 산간 벽지 중계소에 근무하는 기술보직을 가진 많은 동료 사원들이 강제로 통신공사로 전출되는 비운을 KBS는 겪어야 했다.

또 90년 방송민주화에 앞장섰던 용기있는 KBS맨들이 옥고를 치르는 중 회사에서 해고되는 사태를 맛보야야 했다. 이들은 당연한 조처이지만 지금 모두 원상회복됐다. 재입사가 아닌 최초의 입사 날짜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80년 해직자들에게만 유독 89년 재입사가 웬말인가. 80년 여름이후 열 다섯번째 여름이 지났지만 이같이 80년 해직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세월만 흘러가고 있다. 해직자 가운데 이제 많은 사람이 재입사의 형식으로 직장에 돌아왔지만 심지가 곧은 몇몇 해직 동료는 완전한 원상회복을 주장하며 지금까지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이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루 빨리 80년 언론사태의 진상규명과 해직자의 원상회복 조처가 이뤄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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