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씨의 비자금 관련 언론보도 가운데 미확인 추측 기사 및 오보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무책임한 보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기사 3면

특히 시중에 떠도는 ‘설’을 확인 과정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신한은행 서소문 3백억 주인 사채업자설’ ‘“신한은행 계좌 김옥숙씨 것” 설 제기’ 기사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설’에 의존한 기사는 상당수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원조씨 전격출국’ 기사처럼 명백한 오보도 나와 신문사간의 기사 경쟁때문에 기초적인 확인 과정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정확치 못한 보도가 양산되고 있는 것에 대해 한 일간지 정치부장은 “비자금보도의 대부분이 발표 기사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신문사간 차별화를 이루기 위한 경쟁에 따른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했다.

KBS의 정치부 신모 기자는 일련의 비자금 관련 보도가 “소문과 사실이 혼돈돼있는 상황”이라며 “확인 작업이 쉽지 않고 취재 여건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떠도는 설을 무책임하게 내보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S그룹 홍보실 윤모씨도 “소문과 사실이 마구 뒤섞여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며 “정보량이 많고 다양한 것도 좋지만 확인과 정리 과정을 거쳐 엄선된 정보를 내보내 독자들의 혼돈을 막아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에 대해 사실 확인에 인색한 청와대·검찰 등 취재원의 책임이 더 크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정치부 김모 기자는 “우리나라 지도층들은 엄연히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도 기자의 확인을 거부한다”며 “이런 조건 아래서 추측보도라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보도가 가능하겠는가”라며 취재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동아일보 송모 기자는 “검찰 등 취재원들이 최소한의 브리핑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는 조건 아래서 정보접근 자체가 차단돼 있다”며 “이런 조건에서도 비교적 근거있는 보도를 하려는 기자들의 노력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KBS의 진모 기자는 상무대 비리사건의 경우 검찰조사 내용을 야당이 폭로하고 국정조사까지 실시했지만 정부에 의해 묵살돼버린 경험을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 정치관련 기사는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정부가 부인하면 결국 오보가 될 수밖에 없다”며 “많은 기자들이 이를 우려해 기사를 발굴해도 쉽게 쓰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광운대 신방과 주동황 교수는 “이번 비자금 사건은 다른 경우와 달리 언론의 직접적 정보접근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언론이 발굴기사를 쓰고 부정확한 보도를 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국민의 입장에서 제기할 수 있는 의혹을 충분히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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