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치킨게임으로 치닫던 환율전쟁이 일단 수습국면에 들어섰다. 지난 22∼23일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참가국 대표들은 시장결정적 환율제도를 도입하고 경쟁적인 통화절하를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경상수지 목표제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과도한 대외불균형을 줄이고 경상수지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노력한다는 수준에서 합의를 끌어냈다.

다음날부터 언론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세계일보는 "'환율 갈등' 한국 중재력 빛났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대 이상의 모든 타결이 거의 다 됐다"는 준비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고 조선일보는 "'막힌 곳 어디냐' '누구에게 전화하면 되나' 이 대통령 '멀리 보고 일하라' 직접 챙겨"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대통령의 적극적인 개입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서울경제는 사설에서 "이번 합의로 갈수록 심화돼 온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전성이 크게 개선되는 효과와 함께 우리의 글로벌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대안마련·사전조율·끝장토론… 한국 '지적 리더십' 빛났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의장국인 우리 정부의 지적 리더쉽과 공멸을 막기 위한 회원국의 양보가 맞물려 서울 정상회의를 환율 수렁에서 건져내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 세계일보 10월25일 2면.  
 

일단 마주 보고 달리던 열차의 브레이크를 밟았다는데 큰 의의가 있지만 과연 이번 합의 결과로 환율전쟁이 종식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시장결정적 환율제도의 기준이 모호하고 경상수지 목표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데다 강제력 있는 수단도 합의되지 않아 결국 선언적인 수준에 그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해외 언론 반응도 덤덤한 수준이고 금융시장에서도 크게 달라진 것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 서울경제 10월25일 사설.  
 

외신들은 기대 이상의 성과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크게 달라진 것 없다는 냉소적인 평가가 엇갈린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경주 회의는 '분열(disunity)의 전시장이었다"면서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절하했다. AFP통신은 "언젠가 적대감이 되살아나는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신화통신도 "20개국 재무장관이 악수를 한 것은 표면적인 타협이며, 본질적인 이견은 남았다"고 유보적인 평가를 내렸다.

우리투자증권 유익선 연구원은 "외환시장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미세조정은 향후에도 계속 단행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어느 정도 개입이 미세조정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결국 외환시장 개입 자제라는 합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연구원은 "경상수지 목표 범위에 대해서도 특별한 구속력과 패널티가 없는 이상 구체적인 노력이 따라오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우증권 고유선 연구원도 "강제성이 없다는 점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 연구원은 "회의 직후 일본 재무장관은 기존 환율 정책에 변함이 없음을 밝혀 추가 시장개입 가능성을 비췄고 독일 재무장관 역시 미국의 정책이 환율을 간접적으로 조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면서 "환율 갈등이 재차 부각될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고 설명했다. 고 연구원은 "이번 합의는 환율의 방향 보다는 속도 측면에서 합의"라고 덧붙였다.

   
  ▲ G20 IMF 쿼터. 이번 회의 결과 중국의 쿼터가 6.32%로 늘어나 3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IMF·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연구원도 "앞으로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도출 및 이행 중국의 시장결정적 환율제도 이행속도, 그리고 본질적으로 세계경제 회복 강도 등에 따라 환율 갈등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연구원은 "다음 달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이 설정될 가능성도 있지만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일 뿐이며 강제조항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두고두고 무역 및 환율 분쟁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 결과, 가장 큰 실리를 얻은 쪽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은 IMF에서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달러화 약세의 명분을 얻었고 중국은 위안화 절상 압력을 적당히 넘기면서 IMF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EU(유럽연합)는 국제금융시장에서 발언권이 축소되고 유로화 강세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일본 역시 환율 개입에 발목이 잡혔고 우리나라도 한동안 원화 강세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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