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설은 신문윤리강령이 제시한대로 ‘독립불기(獨立不羈:독립적이고 구속을 받지않음)’의 소신을 공정하고 대담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혹 신문의 사설이 정치, 경제, 사회상 편견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난 10일 서귀포 KAL호텔에서 열린 신문편집인협회 주최 세미나에서 외국어대 김정기 교수는 이같은 화두를 통해 우리 논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기했다. 김 교수의 주제발표 ‘한국논설의 문제점’을 요약, 소개한다.


신문사설은 사회의 공기로서 사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필수적인 문제들을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제시해야 한다. 노동자계층이나 그밖에 소외된 계층의 정당한 목소리를 담고 사회가 퇴보의 길로 가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사설의 역할이다. 우리나라의 신문 사설들은 선거 때 특정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문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최근 동아대의 강상현교수가 <부산일보>와 <광주일보>의 보도, 해설, 만화를 비교한 연구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대부분의 신문들은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현상들이 객관적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보도기사나 해설기사에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신문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신문은 이중적인 보도태도를 버리고 선거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신문의 가장 중요한 공적 의견란인 사설을 통해 대중을 이끌 수 있는 합당한 정치적 입장을 밝혀주고 보도, 해설기사는 공정하게 보도해야 한다. 경영측면을 고려한 애매한 논조는 정치발전에도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신문인들은 직업의 특이성 때문에 자신에 대한 성찰과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89년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이내창군의 변사와 관련 이군이 숨지기 직전 안기부 직원이 동행했다는 ‘의문’을 보도했다. 법원은 이사건에 대해 지난해 11월 18일 이기사를 쓴 이공순기자가 허위에 대한 인식이나 특정인을 비방할 목적이 없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언론자유의 신장에 발맞춰 언론도 제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기자상 수상자 중에 자사 기자가 없다고 하여 이를 거론조차 하지 않는, 직업적 양식에 어긋나는 일도 아직까지 비일비재한 형편이다.

신문사설의 논조가 현상의 표면만을 보고 극적인 좌충우돌을 계속한다면 독자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문에 대한 신용에도 흠이 나게 된다. 사건을 크게 보도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사건의 원인과 경위를 파악해 현상속에 숨은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쟁의 관련 보도에 있어 그저 ‘문제가 있다’거나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라는 이분법적 틀로 접근하고 있는데 이런 접근은 독자의 이해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금융실명제가 발표됐을 때 신문들이 보인 획일적인 태도는 우려를 갖게 한다. 대부분의 신문이 ‘주사위는 던져졌다’거나 ‘실명제는 성공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정작 충격의 실체, 부작용의 정체, 그리고 이 부작용에 대한 공정한 논평과 건전한 비평은 외면했다. 중소기업의 부도와 연속적인 도산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보완조치라는 팡파르만 요란하게 외치는 현상은 속빈 공동화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 동아를 비롯해 많은 신문들이 옴부즈맨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옴부즈맨제도라면 신문의 사설란과 독자란을 같은 지면에 나란히 두고 상징적인 토론의 장을 형성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전세계의 유수한 신문들은 지면배치에 있어 이러한 틀을 유지하고 있고 저명인사들의 비판적인 의견을 실어 독자란의 의의를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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