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문제로 온나라가 한달째 시끄럽다. 지난 대선자금의 공개가 문제로 대두되자 김영삼 대통령은 노씨로부터 한푼도 받지않았다고 공언한 것으로 보도돼 민자당내에서조차 그 말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총장이 고등학교 후배인만큼 이런 때 현 대통령을 보호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데 검찰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서 퇴임한 뒤에도 무사할 것인가? 우리나라 광복 50년 현대사에서 전임대통령들이 과거의 잘못으로 수난을 받지 않은 예가 없음을 볼 때 3년뒤, 5년뒤 김대통령의 운명도 밝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김영삼씨는 대통령 취임전에도 여러가지 잘못을 했다. 국민들의 견제 심리가 발휘돼 생성된 국회에서의 여소야대를 3당야합으로 무력화시켰다. 민자당정권하에서 지역차별도 더 심화됐다. 김영삼씨는 후보가 되겠다는 일념에서였는지 노태우정권의 잘못에 대해 당내에서 견제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다. 3당합당이 되지않고 야당의 견제기능이 살아 있었다면 6공비리는 훨씬 덜했을 것이다.

약간의 우여곡절끝에 김영삼씨는 민자당의 대통령후보가 됐고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 막대한 선거자금이 투입됐다. 그많은 선거자금을 어떻게 조달했고 그중에 얼마를 노씨로부터 지원받았느냐는 것이 김대통령측을 향한 국민의 의혹이다. 이 의혹을 해소하라는 요구는 검찰이 노태우씨와 김옥숙씨를 구속한다하여, 정주영씨와 이건희씨를 소환한다하여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취임뒤에도 여러가지 잘못을 했다. 율곡비리, 동화은행 비자금, 서석재씨 발언 등 수차에 걸쳐 6공비리를 밝힐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폐하고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최저수준으로 하락했고 지방선거에서 대패하기에 이르렀다. 김영삼정부의 취약성을 간파한 수구세력은 금융실명제 등 현정부하에서의 개혁이 민심을 이반시켰다는 도착논리를 내세워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수구세력이 기용되고, 노태우씨 때보다도 못한 반개혁조치가 잇따라 나왔다.

경제가 김영삼대통령 정부하에서 더 깨끗해졌다는 증거가 없다. 경제정책은 노태우씨 때에 비해 더 수구적이고 불로소득자 중심이다. 재벌의 힘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중소기업가는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김대통령 친인척 비리설이 파다하고, 대통령 자신이 여전히 청와대에서 돈을 받고 있다고 의심하는 국민들도 다수다. 인사도 노태우씨 때에 비해 더 엉망이다. 검찰총장 등 요직이 특정지역 출신인사들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검찰의 중립성은 최저수준이다. 호들갑을 떨었던 모든 개혁은 빈껍데기임이 드러났다. 언론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TV를 통한 약간의 눈요기, 노태우씨의 초단기 구속, 몇몇 저질 재벌총수의 단기 구속. 이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정권의 핵심은 열심히 국면전환 카드를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재벌언론을 중심으로 경제에 주름살을 미친다는 협박논리가 벌써 세를 얻고 있지 않은가. 정경유착은 계속되고 이에 따라 전직 대통령이 수모를 당하는 일도 되풀이될 것이다. 국가의 수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김영삼 대통령의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은 역사적 결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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