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죄’는 성역인가.

지난달 19일 박계동의원이 노태우의 비자금을 폭로하면서부터 ‘노씨의 죄’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여기다 기업인과 일부 정치인들도 정치자금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되거나 여론재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무죄인가. 검찰은 언필칭 ‘엄정수사’와 ‘법대로 처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검찰 자신도 이번 사건에서 직무유기의 죄를 면할 수 없다. 지난 93년 5월 당시 검사였던 함승희 변호사가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태우씨 비자금의 일단이 밝혀졌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검찰의 지도부는 함변호사의 수사를 방해했다.

또 지난해 초에는 재벌 총수들이 노씨의 비자금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검찰은 이렇게 노씨의 비자금을 모두 밝혀 놓고도 사법처리하지 않았다. 이것은 수사기관으로서 검찰의 본분을 외면한 직무유기다.

검찰의 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번 서석재전총무처장관의 발언파동 때는 이런 사실을 번연히 알고 있는 검찰이 이번에는 서석재 발언을 조직적으로 하나의 해프닝으로 만듦으로써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 결국 수사기관인 검찰이 직무유기와 사기라는 두 가지 죄를 범한 것이다. 검찰의 이런 행태는 청와대의 승인없이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일까. 이런 일련의 과정에 검찰총장과 검찰차장으로 관여했던 김도언씨는 퇴임 일주일만에 민자당 지구당 위원장이 됐다. 함승희 변호사를 지휘했던 대검 중수부장은 현재 법무차관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방송은 여기에 대해서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각 방송사가 지금까지 노태우사건과 관련해 내보낸 아이템이 3백건을 넘어섰다. 놀라운 기록이다. 이렇게 집중적인 보도를 했다면 당연히 이 사건과 관련된 아이템이 모두 다뤄졌어야 한다. 그런데도 방송이 이런 ‘검찰의 죄’에 대한 보도를 고집스럽게 피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의 죄’가 ‘검찰의 죄’에서 그치지 않고 방송사 사장의 임명권자인 ‘청와대의 죄’까지 옮겨가는 것을 두려워 함일까.

의문은 또 있다. 노태우의 비자금은 그래도 수사대상에라도 올랐다. 여기에 비해 12·12와 5·18은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사법처리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되집어보면 노씨의 비자금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정당한 법집행엔 호들갑을 떨어대는 방송이 왜 군사반란을 처벌하지 않은 것은 대충 넘기고 있는 것일까.

언론이란 국가기관의 정당한 법집행보다 부당한 회피를 더 집중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이런 원칙에서 보면 최근 일련의 방송보도는 본분을 철저히 망각한 것이 된다.

결국 방송은 권력을 잃은 노씨에게는 집중적인 비난을 쏟아 부으면서 현재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검찰과 청와대는 전혀 비판하지 않는 이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송의 태도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전혀 개혁되지 않은 곳이 검찰과 언론이라는 항간의 평가를 철저히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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