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의 음반을 사기 위해 밥을 굶어 본 적이 있는가. 남은 돈을 털어 한편의 연극을 보고 난뒤 그 감동에 젖어 집까지 걸어가 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 땅에는 각종 대중문화에 광적으로 빠져든 10만을 헤아리는 매니아가 있다. 그들은 단지 문화의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소비활동의 극대화를 통해 전문가적인 수준에 올라서 있다. 때로 그들은 문화생산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들은 이미 소비자 주권시대의 중요한 문화적 변수가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이 처음 나왔을 때 전문가들은 음악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상업화에 회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렇지만 음악매니아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갖고 있는 음악성을 놓치지 않았고 이를 보급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내놓기가 무섭게 팔리는 음반이 되었다.

19일에 방송되는 MBC <논픽션 30> ‘대중문화의 게릴라, 매니아를 잡아라’(매니아를 잡아라)편은 바로 그런 매니아들을 찾아간다. 매니아들은 광적인 취향을 가진 문화소비자층이다. 그중에는 별난 수집취미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생업도 포기하고 영화에 빠진 사람도 있다. 록의 계보를 전문가보다 더 잘 외우는가하면 아예 직접 생산자로 나선 애니메이션 제작그룹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도 애초에는 평범한 문화 소비자 층이었다. 문화를 소비하는 가운데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고 약간의 흥분을 느끼기도 하면서 그들은 어느새 그것이 없으면 ‘죽고 못사는’ 매니아가 된 것이다.

서태지 팬클럽 ‘또래네’의 회장인 이혜숙씨는 가정주부이다. 그는 단순한 오빠부대 차원을 넘어 나름대로 전문적인 안목을 갖고 음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전자공학을 하는 문동욱씨는 어느새 오디오 칼럼니스트라는 또 하나의 직업을 얻게 되었다. 3천여장의 음반을 모을 때까지 그는 귀한 판을 하나 사기 위해 세끼를 굶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김성욱씨는 밤 새워 비디오를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사람이다. 그는 퇴근길에 서너편의 비디오를 빌려 집으로 간다. 밤새워 비디오를 보고나면 출근이 늦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지만 그는 회사를 포기하는 일은 있어도 영화만은 놓칠 수 없다는 사람이다.

음악 매니아들은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들을만한 음악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라디오가 그럴진대 그보다 더 보편성을 강조하는 TV는 어떨 것인가. 이제는 방송도 전문화가 돼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방송은 여전히 전문성은 물론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도 충분하지 못하다. 이 프로그램은 그런 대중적인 전문성에 대한 탐색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허태정 프로듀서는 평범한 가운데 매니아의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을 추적해보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화면과 오디오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TV의 속성상 ‘광적인 매니아’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또 매니아들이 그들의 세계가 미디어에 걸러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섭외에도 애를 먹었다고 토로한다. 허태정 프로듀서의 첫연출 프로그램인 ‘매니아를 잡아라’를 통해 오늘을 사는 보통사람들의 숨겨진 또다른 단면을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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