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발매된 본지 26호(11월 15일자)에 게재된 ‘서울시 휘장 일제 잔재아니다’는 중앙일보 정운현 기자의 지적에 대해 문제가 됐던 보도(KBS 9월 13일 <9시 뉴스> ‘서울시 휘장은 일제 잔재’)를 했던 KBS 박태서 기자가 반박문을 보내와 게재한다. 활발한 토론문화의 정착을 지향하는 본지의 입장에서 이같은 논쟁이 언론활동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의 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중앙일보 정운현 기자가 <미디어 오늘>에 기고한 비평기사를 읽고 먼저 풍부한 전문지식과 본 보도에 보인 관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울러 일제청산이라는 시대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서 바람직한 서울시 휘장의 개정방향을 제시한 정기자의 역사의식을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본인의 보도가 사적고찰과 검증없이 썼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한 정기자의 글은 기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사실 확인이라는 기본적인 절차마저 무시한 채 자신만을 과신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나아가 정기자의 글은 KBS 9시 뉴스가 마치 아무런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은채 방송되는 것처럼 단정하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

정기자가 쓴 기고문에는 본 기자가 수긍할 수 없는 대목이 있어 이에 납득할만한 답변이 있기를 기대하며 몇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기자는 총독부에 남아있는 문양이 단순한 장식문양이라고 했는데 이 문양이 일제가 도안한 연화문, 곧 연꽃문양의 변형된 형태라는 점을 몰랐던 것같다. 연화문은 불교의 상징으로 쓰이기 훨씬 이전부터인 고대로부터 사용된 문양이다.

연꽃은 태양의 뜨고 짐에 따라 꽃이 피고 닫힘을 반복하는 꽃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꽃으로 사용돼왔다. 여기서 일제와 연꽃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즉 일본은 태양을 그들의 상징으로 하는 민족으로 ‘日本’이라는 이름조차 태양이 뜨는 근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들의 국기도 태양을 상징하고 있다.
스스로 ‘천손족’, 즉 태양의 자손으로 자칭하는 그들이 태양의 꽃을 상징하는 연화문을 조선총독부 곳곳에 새겨놓은 것은 단순히 그들의 국화인 벚꽃을 새겨놓은 것보다 더 간교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제는 이 연화문을 통해 일제의 군국주의가 연화문의 뻗어가는 빛처럼 영원하기를 기원했고 일제의 조선지배가 영원하기를 바란 것이다. 화생이론(化生理論), 즉 움터나오는 새로운 생명을 피어나는 꽃잎과 화심(花心)을 통해 상징하는 문제의 연화문은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나 일본황실의 문장인 국화(菊花)보다 더욱 고등적인 주술문양인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정양모 국립박물관장과 미술사 학예연구관과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된 것으로 정기자의 시각은 국내 미술사학계는 물론 일본에서도 알려진 지 오래인 이 연화문의 숨은 의미―제국주의의 번성과 한반도의 영원한 지배―를 빠뜨린데서 출발했다고 본다.

한편으로 일본황실 문양이 국화이며, 총독부의 상징이 오동나무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정기자가 왜 이점에 대해서는 애써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둘째, 현 서울시 휘장은 당시 유행하던 문양형식을 모방했으리라는 정기자의 추론은 옳다고 본다. 서울시의 휘장은 지난 1947년 일반인 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품으로, 현재 휘장제정 당시를 기억하는 유일한 도안전문가인 조모씨는 휘장제작자―이일(李一)이라는 20대 초반의 아마추어도안가―가 총독부건물내의 문양을 표절했을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던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 바, 정기자의 ‘모방가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즉, 당시(1947년 서울시 휘장제정당시) 문양 등 디자인 분야의 연구가 일천하기 짝이 없던 우리나라 도안가들은 대부분 일본의 도안교본(예:도안집대성)을 참고로 문양을 만들었는데 총독부 건물안에서 발견되는 문제의 문양 역시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결국 당시 유행하던 문양을 그대로 모방해 응모한 이 작품이 현 서울시 휘장이 됐음은 물론, 불행하게도 이 문양이 일본의 사악한 저의를 담고 있는 총독부내 문양과 흡사하다는 점이 기자가 서울시 휘장은 ‘일제잔재’라고 주장한 이유다.

더구나 총독부와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경성부청사(현 서울시청) 현관입구에도 현재의 서울시휘장과 판에 박은듯이 흡사한 문양이 새겨져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을 더욱 분명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덧붙여 기자는 이같은 사적(史的)근거와 사실(史實)을 토대로 일제가 도안했던 연화문이 해방이후 문양
에 대한 전문적 검증이 어려웠던 당시의 혼란한 사회분위기하에서, 한 아마추어 도안가가 응모한 작품이 서울시휘장으로 그대로 채택됐다는 점에서 ‘광의의 일제잔재’로 본 것이다.

셋째, 정기자는 이번 보도가 현 서울시휘장이 서울의 8대 명산을 근거로 제작됐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총독부 문양과 같다고 주장했다고 말하는데, 본인이 <기자협회보>에 쓴 ‘이달의 기자상’ 수상소감을 단 한 줄이라도 제대로 읽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자는 서울시 휘장의 8각이 서울시내 8대 명산을 근거로 제작됐다는 사실은 물론, 휘장제작자가 누구이며 또 어떻게 제정됐는지 등 당시의 정황을 취재과정에서 확인했다고 <기자협회보>에 이미 밝힌 바 있다.

끝으로, 정기자가 본인과 전화 한통화만이라도 했더라면 본 보도가 얼마나 긴 기간에 걸쳐 취재한 결과였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취재됐고, 역사적 검증과 미술사적 고찰이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확인과정없이 기자의 보도를 일방적으로 ‘과문의 탓’이라며 혹평한 것은 단순히 비평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본다.

정기자가 매체를 통해 본인의 KBS <9시 뉴스> 보도의 신뢰성을 실추시키는 글을 쓴 만큼 본기자의 이 글에 대해서도 답변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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