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일보 직전에 극적 수습양상을 보이던 문화일보 사태가 사측의 위약으로 다시 노사간에 대치국면을 보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파업 사태를 원만한 대화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직장폐쇄’등 강경대책으로 일관, 파국적 상황을 조성했던 사측이 노사간의 최종 합의를 뒤집어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 것은 어떤 해명으로도 책임을 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문화일보 사태의 최대 쟁점이 됐던 부당인사 철회문제에 대해 노조가 대폭 양보, 사측의 ‘중앙노동위 판결 수용안’을 받아들였고 주요 단체협약 사안 등에 대해 노사간에 최종합의에 도달했었던 만큼 사측이 이같은 최종 합의사항중 일부를 뒤집고 나온 것은 어떤 식으로든 사태를 파국국면으로 몰고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해되기 어렵다.

문화일보는 이미 한 재벌이나 그에 의해 임명된 발행인의 시각이나 의견만을 전달해도 되는 사보나 개인신문이 아니라 역사의 기록자로서 공공의 여론형성을 위한 정보의 정확한 제공과 의견의 공평한 제시를 책임진 공적 기구이다.

문화일보의 경영진은 바로 이같은 공적 책무에 부응하는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지면을 통해 노사간의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언론사의 경영진이 노사간의 합의마저 일방적으로 깨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간다면 언론사의 경영진으로서 그 자질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문화일보의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에 전개된 분쟁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낡은 사고체계가 사람들의 건전한 삶을 도처에서 억누르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낡은 사고체계는 박정희 정권의 오랜 군사개발독재와 전·노 2대에 걸쳐 연장된 군사독재의 낡고 병든 이데올로기로서 황금만능풍조로 대표된다.

황금만능사상을 떠받들어온 언론계와 교육계의 비인간적인 상부계층은 곳곳에서 인간중심의 새로운 사고체계와 격돌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일단이 문화일보 사태로 돌출돼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런 만큼 이번 문화일보 사태를 언론사의 노사분쟁의 하나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문화일보사태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언론자유의 진정성을, 언론 자본과 언론 경영자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곱씹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언론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첫째, 개인의 언론자유는 우리 사회에서 언론기관에 제도적으로 위탁돼 보장돼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렇다면 언론기관은 개인적 자본이 투자됐다 하더라도 그 공공적 책임이 우선하는 것인 만큼 현대그룹이 사심을 버리고 사회공공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문화일보를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언론노동자의 취재·편집노동은 고도의 지능과 숙련을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것이다. 그들은 상업이윤의 추구를 최대의 목표로 삼는 영리기업의 대졸 간부사원들이 아니라 공익성을 상업성에 우선해 판단해야 하는 언론인들이다. 물론 언론자본가는 발행인에게 상업적 경영책임을 맡기지만 이 경영자는 상업성과 공익성의 조화를 겸한 수준높은 지식과 지도자적 경륜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훌륭한 언론경영자는 공작이나 요령이 아니라 위엄과 덕망으로 언론노동자가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못하도록 꾸짖으면서도 언론자본가로부터 신문편집권을 독립 또는 공유케 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

셋째, 정기간행물법에도 발행인은 노사협조의 정신에 따라 종사자의 근무환경·처우 기타 복지증진을 위해 필요한 대책을 강구해야 하고 종사자의 편집 및 제작활동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는 만큼, 현대그룹도 일반의 비판여론을 수렴해 좀 더 인간중심적인 언론경영진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언론의 위상과 언론인의 품위는 정권이나 자본으로부터 독립성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만큼 문화일보를 더욱 여론형성력과 여론지도력이 있는 ‘신문다운 신문’이 되게 하려면 문화일보 공동체는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노사협조가 원만하게 이뤄지고 그 구성원이 더 자주적으로 자기의사를 결정할 수 있게 더 영특한 지혜들을 모아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경영진들은 우선 노사간의 합의를 존중, 사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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