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KBS가 방송 송출 도중 '노조 불법파업' 흘림자막(스크롤)을 내보낸 데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이진강)는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권고'를 의결했다.

'권고'는 행정지도 성격으로 방송사 재허가 심사 때 감점요인으로 작용하는 법정제재가 아니다.

6대 3으로 수적우위에 있는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의 의견이 주로 반영된 결과이나, 위원장을 포함한 여러 위원이 KBS 회사 쪽의 상황인식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방통심의위는 이날 전체회의에 이 안건을 상정한 뒤, 지난 8일의 결정에 따라 KBS 쪽의 의견을 들었다. KBS 의견진술자로 참석한 서재원 편성국장과 법무실 관계자는 당시 흘림자막에 대해 "편성 변경을 알리려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며, 노조 파업이 불법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아울러 "주조종실에서 하루에 수백 개의 스크롤이 나가는 상황이라 담당자의 즉각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자막을 파업이 아닌 불법파업으로 내보낸 게 적절했느냐'는 질문에 서 국장은 "본인 입장에서는 타당했다고 본다"고 답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편성국장으로서 동일하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 자막 송출에 불법파업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긴박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이뤄진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던 것과 배치되는 답변이었다.

이 위원장이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여기까지 안왔을텐데 하는 후회나 좀 더 신경 써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나'라고 마지막으로 되묻자 그제야 "향후 하나하나 신중하고 사려 깊게 생각해야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답할 뿐이었다. 당시 파업이 불법파업이라고 인식했을 수 있는 시청자나 파업 당사자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고, 그 대신 "어찌됐든 KBS 자막으로 심의위원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만 했다. 

한 시간여의 의견진술과 질의응답이 끝나고 의견진술자들이 퇴장하자, 제재수위를 놓고 위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러나 정부여당 추천위원들마저도 서 국장의 현실인식을 우려했다. 이진강 위원장은 "나도 '의견제시'로 생각하고 왔는데 하는 얘기 들어보니까 '일방적 주장을 전했다'는 구성요건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권고'와 함께 법정제재가 아니면서 '권고'보다 제재수위가 낮은 '의견제시'로 생각하고 왔는데, 서 국장의 의견을 듣고 보니 '권고'나 오히려 이를 넘어선 '주의' 등의 법정제재 요건이 된다는 뉘앙스였다. 야당이 추천한 엄주웅 상임위원과 이윤덕 백미숙 위원은 서 국장의 진술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 KBS2TV 7월4일 <해피선데이 스페셜> '1박2일'. ⓒKBS  
 
백미숙 위원은 "법정제재 여부는 차치하고 과연 KBS가 국민으로부터 신탁 받아 방송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자리였다"며 "통상 '의견진술'은 소명의 기회를 주고 제재수위를 완화시키는 자리로 아는데, 오늘 의견진술은 예상보다 문제가 더 심각했음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여권이 추천한 이재진 위원도 백 위원의 이 지적에 동의했다.

그러나 제재수위 결정 과정에서는 전용진 부위원장과 권혁부 위원 등 여권이 추천한 6명의 위원 전부가 법정제재에 반대해 사안은 심각한데 제재는 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특히 권혁부 위원은 "방송심의 대상 자체가 안 된다", "내가 KBS 있을 때 서너 번 파업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불법파업이라고 했었다" 등의 발언으로 일관해 이 위원장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결국 법정제재를 굽히지 않은 이윤덕 위원과 각하 의견을 고수한 권혁부 위원 두 명의 의견을 소수의견으로 하고, 위원회는 7명의 위원의 동의로 '권고'를 의결했다. 적용 조항은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4항으로 '방송은 당해 사업자 또는 그 종사자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안에 대하여 일방의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를 오도하여서는 아니 된다'이다. KBS 회사 쪽이 '불법파업'이라고 일방적인 주장을 자막에서 전달했다는 것이다.

야당추천 위원들은 심의규정 제14조 '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여 시청자를 혼동케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도 적용할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7월 한 달여 동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진행한 파업에 대해 KBS본부 쪽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중지 결정 등 합법적 절차를 거친 만큼 문제가 없는 '합법파업'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KBS 회사 쪽은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 근무조건과 무관한 사안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불법파업'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KBS는 지난 7월4일 <해피선데이 스페셜> '1박2일' 방송 중 "현재 방송 중인 <해피 선데이 스페셜>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불법파업으로 인한 기 방송된 내용의 재편집 분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시청에 불편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내 논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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