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제를 다루는 일부 신문사 논설위원들의 무지와 사유의 천박함, 무리한 결론을 도출키 위한 사실의 왜곡과 음해를 보노라면 처연한 심정을 지울 수 없다.

날카로운 비판 대신 둔탁한 돌덩어리가 날아다닐 뿐이며 진지한 성찰 없이 지능낮은 동물의 조건반사적인 반응만이 횡행한다.

그들은 민노총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경영참가 확대, 분배정의 실현과 사회보장 실시를 요구하고 나서자 이를 ‘좌경집단’(한국일보), ‘과격투쟁단체’(중앙일보)로 매도하는 게으른 우파들의 무지를 드러내고 말았다.

노동조합이 어떤 형태로든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최근 미국의 새로운 경영 흐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노조의 경영참가 확대 현상을 민노총이 요구한다고 그게 왜 좌경이고 과격투쟁이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사회보장 요구가 불순한 이념의 산물이라면 ‘현실자본주의’의 기본 이념 가운데 하나인 복지국가를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떤 신문이 제기한 독점재벌 해체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사회의 건강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것이 일개 가족이 좌지우지하는 재벌의 족벌 경영이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같은 독점재벌들의 폐해를 우리는 추잡한 노태우 파동을 통해 지금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그러나 언론으로서 더욱 큰 문제는 민노총이 실제로 독점재벌 해체를 제기하지 않았음에도 일부 신문에서는 마치 그런 것처럼 펜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명백한 무지의 소치이며 왜곡이다. 민노총은 독점자본에 대한 규제 강화와 중소기업 보호를 강령으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부도 이 정도는 얘기하고 있다.

민주노조를 언급하기 위해서 그들이 준비해 놓은 어휘수는 몇 개 안된다. 과격, 좌파, 사회불안, 정치투쟁, 노노대결 등 제한된 몇개 단어만이 있다. 그들이 민노총을 향해 ‘섣부른 이념주의’(조선일보)에 빠지지 말도록 잘난체하며 충고하는 태도는 민주노조에 대한 켸켸묵은 이념 공세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 경직된 이념틀에 얽매여 민주노조를 이념적으로 매도하는 그들이야말로 천박한 ‘이념주의자’로 불려 마땅하다.

신문들의 민노총에 대한 비판은 내용의 충실성을 떠나 형평성의 문제에서도 심각한 결함이 발견된다. 신문들이 민노총의 ‘정치세력화’ ‘사회개혁’을 요구하고 나선데 온갖 비난을 집중시키면서 한국노총이 정치국을 만들고 선거를 계기로 적극 활동하고 있는 부분과 역대 노총위원장들이 집권당의 전국구 의원으로 변신한 것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고 있다.

사회개혁도 마찬가지다. 한국노총과 경총은 정부의 지원아래 이미 지난해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사회개혁을 요구했으며 ‘합의’했다. 당시 언론들은 노동조합의 ‘성숙도’를 반영했느니 어쩌니 하면서 찬사를 보냈다. 언론의 자기분열은 치유돼야할 질병이다.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개혁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일 따름이다. 물론 언론은 그 속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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