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조사결과와 관련한 발언으로 우리 정부에 충격을 주고 있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에 대해 미국 보수인사들이 초청해 천안함 관련 의견을 듣겠다고 밝혀 미국 보수층조차 한국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9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정세현의 정세토크' <그레그는 왜?>에서 최근에 들은 얘기라면서 천안함에 대한 그레그의 설명이 오는 23일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나올 것 같다고 전했다.

미국 외교협회(ACFR)란 단체의 앨라배마 지부가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그레그 전 대사한테 30분을 줬다는 것이다. ACFR은 상당히 보수적인 외교 전문가들의 모임으로 알려져있다.

정 전 장관은 그레그가 ACFR의 참석 요구에 '당신들 같이 보수적인 사람들의 모임에서 내가 천안함 얘기를 해도 되겠냐?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ACRF 쪽에는 "괜찮다. 그래도 들어야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노컷뉴스  
 
이번 그레그 전 대사의 세미나 발표는 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정 전 장관은 소개했다. 정 전 장관은 "그레그가 천안함에 대해 발언을 하는 목적은 한국 정부를 어렵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이 또 다시 수렁에 빠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진실을 얘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또 그레그가 자기와 가까운 한반도 문제 연구그룹 친구들과 주고받은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소개했다.

"미국이 60년대 중반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베트남 전쟁을 확대했고 2003년에는 대량살상무기를 구실로 이라크 전쟁도 벌였지만, 그건 상대방을 악마로 규정하고 짜 맞춘 정보 해석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결국 미국에 재앙을 가져왔을 뿐이다. 지금 미국이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의 북한 때리기에 협조하고 있는데, 앞으로 미국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정부가 잘 못되는 쪽으로 가고 있을 때 그걸 바로 잡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동북아정책 현장에 있던 우리가 진실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정 전 장관은 "그레그가 그 정도로 각오하고 움직인다면 이제 우리 정부가 수습해야 한다"며 "그레그의 입을 막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천안함을 뛰어 넘으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지난 7일 '모르는 사이도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만나 물어보고 싶다. 토론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 "그레그가 그간 보여 온 모습이나 미국 내에서의 한반도 관련 그의 입지·위상을 봐서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설득한다고 해서 입을 닫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의 전도사 같은 인물로 일방적인 시각에서 상황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유엔 주재 한국 대표부의 고위 관계자의 말(MBC 라디오 <뉴스의 광장>)에 대해 정 전 장관은 "그레그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 주한 미국 대사를 했던 사람이며, 그 뒤에도 아버지 부시하고 계속 교류를 해오고 있다"며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에 그레그가 아버지 부시한테 '대통령이 저러면 안 된다'고 계속 입력을 시켰는데,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잘 안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도 아들은 어쩌지 못 하더라'는 말까지 하더라"고 소개했다.

정 전 장관은 이어 "그레그는 지한파 인사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의 국익부터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중앙정보국(CIA) 출신이기 때문에 정보도 많고, 지금도 정보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도 그레그가 지난 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CIA 서울 책임자로 재직하다 미국 정부로 하여금 이 문제를 풀도록 했던 인연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DJ에 대한 정치적 지지 때문이 아니라 미국적 가치에서 볼 때 잘못된 일을 막기 위해 그런 역할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그레그가 햇볕정책 지지자라서 지금 저러고 있다고 말하는 건 밖에 있다 보니까 요즘 우리국민들의 수준을 잘 몰라서도 하는 얘기"라며 "김대중 대통령과 가까웠기 때문에 천안함 발표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는 건 국민의 수준을 정말 무시하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천안함 정부 발표를 믿는 국민이 채 32% 밖에 안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들어 "정부는 그 숫자의 의미를 절대 흘려들어서는 안된다"며 "실체적 진실이 어떻든 천안함과 관련해서 정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통일부에 대해 "천안함 사과를 대화의 조건으로 거는 건 거둬들이고 수해 지원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 안팎의 강경파들에게 끌려 다니거나 눈치를 보지 말고 대화의 수준을 높여 나가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