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정의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문화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정신 상태, 혹은 그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이 때의 문화란 문명개화(文明 開化)의 준말이라고 할 만한데, 미개 혹은 야만이 그 반대의 뜻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정부조직의 한 부서인 문화부는 국가를 문명개화시키는 중요한 일을 하는 부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이 정부에서 유행하는 말로 국격(國格)을 높이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유인촌의 문화부, 철학과 비전의 부재

하지만 MB 정부 하에서, 특히 전임 유인촌장관 하에서 문화부가 우리나라를 문명개화시키고, 국격을 높이는 일을 제대로 해왔다고 할 수 있을까?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결코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죽하면 7·28 보선에서 당선된 최종원 의원이 공공연히 “한 대 맞고 시작하자”라고 말해도 그의 ‘폭언’을 나무라기는커녕 은근히 ‘속 시원하게 말 한번 잘했다’라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더 많을까?
유 장관을 위한 변명을 하자면 그의 언행은 개인적인 인격의 문제이며, 김정헌, 황지우 등의 축출은 MB 정부 전체의 기조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하자.

유 장관 시절의 문화부를 평가하라면 나는 한마디로 문화정책이 지향하는 비전과 철학의 부재라고 하겠다. 그러한 기준이 있어야 그에 비추어 문화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데, 그것이 없으니 개별 사업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개별 사업들 대부분은 사실 참여정부에서부터 실행되었거나 입안된 일이다. 개별사업에서는 유 장관 시절의 문화부가 참여정부의 흔적을 지우려고 기를 썼으나 결국은 그 연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소소한 장관 개인의 언행이나 인사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MB 정부의 출범과 함께 그 이전 정부와는 다른 이념을 가진 새 정부는 과연 어떤 문화정책을 내놓을 것인가에 대해 적지 않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더구나 첫 장관으로 연극인 출신이면서 서울문화재단에서 행정 경험을 쌓은 유인촌씨가 임명되자 적어도 예술정책에서만큼은 MB 정부의 이념이라 표방한 ‘실용’ 혹은 ‘선진화’가 어떤 정책으로 구현될 것인가에 대해 자못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유 장관 스스로 장관이 되자마자 ‘희뿌연’ 정책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더니, 각 분야별로 정책을 발표하겠다고 구체적인 일정을 들면서까지 말했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감히 문화정책의 부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MB 정부 전체의 철학과 비전의 부재에 대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정부의 이념은 문화정책에서 가장 적절하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과 비전의 부재로 말미암아 유 장관 치하에서 문화정책은 야만의 수준에 머물렀다. 그 증거로 문화예술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출범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상이 유인촌 장관 치하에서 완전히 땅에 떨어진 사실을 들 수 있다. 문화정책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바닥까지 내려갔으니 유인촌 장관의 후임으로 새로 일하게 된 분은 그런 면에서 유리한 입장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임 장관과는 다르게, 조금만 잘 하면 그 보다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정희섭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영진위 위원장 문제 처리가 바로미터

신임 신재민 장관은 이 정부의 철학과 비전이 구현된 문화정책을 내 놓을 수 있을까? 우선 그 스스로도 물러나라고 했던, 이 정부 들어 가장 대표적으로 야만의 정책을 구사한 영진위 위원장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것부터 지켜보기로 한다. 신임장관이 야만의 시절을 넘어 문명개화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싶기는 한데, 또다시 실망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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