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보도에서 한겨레가 동아일보나 중앙일보 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기사를 쏟아낸 것으로 집계됐다. 이른바 조중동 등 보수 성향 언론 보도에서 삼성을 취재원으로 하는 기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김용철 변호사와 정의구현사제단을 인용한 기사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 백기철 국제부문 편집장은 최근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논문으로 쓴 "경제 권력의 언론 통제에 관한 연구"에서 "상당수 국내 신문사들의 재정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적 당파성에 휩싸여 공정성을 상실하거나 광고 등을 의식한 대기업 눈치 보기로 관련 지면이 크게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 편집장이 김용철 변호사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했던 2007년 10월30일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된 2009년 8월15일까지 1년 10개월 동안 조중동과 경향·한겨레 등 5개 신문 기사 1353건을 분석한 결과 진보와 보수 성향의 신문들의 보도 태도와 관점이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관련 보도 건수, (2007년 10월30일부터 2009년 8월15일까지). ⓒ백기철.  
 

먼저 기사 건수를 보면 중앙일보가 164건으로 가장 적었고, 동아일보가 216건, 조선일보가 230건에 그친 반면 경향신문은 301건, 한겨레는 442건의 기사를 쏟아냈다. 경향과 한겨레를 진보성향으로, 조중동을 보수성향으로 분류한다면 진보성향 신문들이 1.8배 가량 더 많은 기사를 쓴 셈이다.

백 편집장은 "삼성 비자금 사건과 같은 민감한 사건에 대한 기사 총량은 각 신문의 이 사건에 대한 시각이나 논조를 객관적으로 드러내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면서 조중동 등 보수성향 신문들이 이 사건 보도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고, 경향·한겨레 등 진보성향 신문들이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취재원 선정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삼성을 취재원으로 하는 기사가 중앙일보는 전체 관련 기사 가운데 15.2%나 됐다. 동아일보가 10.6%, 조선일보가 10.4%로 뒤를 이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각각 8.6%와 9.5%로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기사 건수는 더 많았다.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 사제단을 취재원으로 하는 기사는 경향·한겨레가 더 높게 나타났다.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취재원 유형과 편집 배치는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사제단을 인용한 기사가 중앙일보는 5.5%, 한겨레는 12.9%였는데 삼성을 인용한 기사는 거꾸로 중앙일보가 15.2%, 한겨레는 9.5%로 역전됐다. 관련 기사가 1면에 배치된 비율은 중앙일보가 7.9%인 반면 한겨레는 20.4%나 됐다.
 

   
  ▲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보도 취재원 유형. ⓒ백기철.  
 

5개 신문의 관련 사설을 비교한 결과도 흥미롭다. 백 편집장은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사설은 '반삼성', '반기업주의' 이데올로기의 양태로 나타났다"고 평가한 반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검찰 수사의 문제점이나 한국 경제에 미치는 타격을 우려하는 논조를 펼치는 등 '친삼성' '친기업주의' 이데올로기 형태를 띠었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독특한 논조를 유지했다. 백 편집장은 "조선일보는 중앙·동아와 달리 삼성의 폐쇄적 기업문화, 사회 지도층에 대한 전방위적 로비 행태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정부분 '삼성과 거리 두기'식의 논조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친기업주의'적인 논조도 그다지 눈에 띠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백 편집장은 5개 언론사 데스크와 기자 13명을 익명으로 인터뷰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최대 광고주인 삼성이 언론 보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답변을 했다. 삼성이 비자금 사건 와중에 광고를 통해 언론 보도를 규제하려 했다고 보느냐, 실제 보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각각 13명 가운데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동의했다.

삼성의 광고중단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게 나타났다. "대기업이 자사에게 비판적인 언론사에 광고를 주지 않는 것은 선택의 문제로 당연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기업이라 하더라도 비판적 보도에 광고 중단으로 대응하는 것은 언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충격적인 건 삼성의 압력을 의식해 취재·보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취재에 임하지 않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이른바 자기검열이 이뤄졌다고 털어놓은 기자들이 여럿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기자는 "간부가 될수록 회사 경영 상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검열을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 기자는 "현장 기자의 발제 내용이 묵살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삼성 관련 보도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느냐, 않느냐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친삼성 논조를 유지해온 신문은 물론 비판적 논조의 언론에도 비판을 무디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취재와 편집에서 자기 검열이 개입케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털어놓았다.

"신문업계 전반에 삼성의 광고주로서의 영향력이 지대했다고 생각해요. 일부 언론은 특별검사의 수사를 추수하는 수준의 보도에 그쳤고, 이건희 회장 기소 뒤에도 재판 절차나 내용에서 드러난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측면들을 간과했죠. 대법원 심리 과정에서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가 늦어지고, 그 과정에서 대법원이 갈등에 빠졌던 일,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유죄 인정 부분을 확대하면서도 형량은 이전 항소심 것을 유지하는 등 상궤를 벗어나는 일들이 일어났는데도 대부분의 신문이 문제삼지 않았어요."

백 편집장은 이 논문에서 노암 촘스키 미국 매사츄세츠공과대학 교수의 프로파간다 모델을 삼성 비자금 사건에 도입해 권력과 자본이 어떻게 뉴스를 여과하는지를 분석했는데 다섯가지 여과장치는 미디어의 소유, 미디어의 자금을 지원하는 원천, 정보의 원천, 격론, 반공 이데올로기 등, 여기에 기자들에 대한 직접 매수가 여섯 번째 여과장치로 꼽힌다.

백 편집장은 이번 연구에서 삼성의 광고주로서의 영향력, 취재원으로서의 영향력,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등이 관련 보도에서 여과장치로서 기능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주와 경영진의 이해관계 및 회사의 수익성에 대한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기자들에 대한 직접 매수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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