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기는 김준범 차장이 80년 해직을 당할 무렵 강제로 사표를 제출했던 7월 30일과 사표수리가 발표됐던 8월 1일의 일기 전문이다.

7월 30일(수)

그동안 끈질기게 나돌던 언론정화 바람이 드디어 오늘 그 막을 올렸다.

언론정화위원회란 이름으로 사표를 쓰도록 만들어졌었다. 합법적으로 따지자면야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모두들 예상했던 것인지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사표를 썼다. 오늘 오후 5시까지 쓰도록 했다. 보안사에 있는 이대위 얘기로는 중앙매스컴에서 30명 이상이 될 것이라 한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이즈미상과 만나 두어시간 얘기했다. 가오미상도 어제 홍콩으로 갔다 한다. PD 이병효는 끝내 그런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사표는 쓸 수 없다고 한다. 논리적으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X이 무서워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고 마음의 위로를 가져본다.

만나는 사람마다 농담 반 진담 반, 어디 밥 벌이 구해 놓았느냐는 게 인사다. 나야 별 탈이 없으리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결코 기분이 좋지는 않다. 웬지 불안하고 석연치가 못하다. 먼 훗날 이에 대한 정당한 해명과 분석이 있을 것이다. 나의 구체적인 감회를 술회할 것이다.
오후 6시쯤 아재댁에 갔다. 저녁 식사후 귀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8월 1일(금)

출근하면서부터 방 분위기가 야릇하다. 평소같으면 조간신문을 펼쳐들고 서로들 이야기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제법 시끌렁한데 오늘은 웬지 그렇지가 못하다. 뭔가 무거운 기류가 보도국 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서로들 대화 대신에 수인사만 있을 뿐이다.

이따금씩 주고 받는 이야기는 오늘 오후 5시에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등 혹은 몇 명선이 될 것이라는 등의 여러가지 추측과 그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마음과 마음은 얼어붙었다. 편제부의 경우도 오늘 우리가 석간 당번이지만 아침부터 출근했다. 한선배도 마찬가지로 일찍 출근했다. 서로들 가슴을 조마조마 애태우면서 시간은 흘렀다.

오후 1시쯤 됐을까. 편집국과 출판국 명단이 어느 틈엔가 입수가 됐다. 편집국에 12명, 출판국에 6명(?). 그대까지만 해도 보도국 명단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기준은 지난번 제작거부 때 강력하게 주장했거나 광주사태를 취재했거나 한 사람이면 일단 포함이 된다고 하는 말이 퍼졌다.

거의 대부분 두려워했고 또 일부는 아예 모든 짐을 이미 정리해놓고 마치 전출명령 받은 이등병 대기병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성, 노 두 선배는 굳은 각오가 돼 있었다. 그러다가 한선배가 4시 석간 회의를 마치고 나서 4시 30분쯤 됐을까. 백선배가 한선배를 밖으로 불러 내더니 몇 분 후에 들어왔다. 약간 안색이 달라진 기분이었다.

그러더니 “오늘 석간못하겠다. 준범아, 네가 좀 진행해라” 하고는 긴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고 뭔가 석연치 않은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이미 발표가 났어요?” 거의 퉁명스러우리만큼 내가 물어본 것은, 내 차례가 아닌데 나에게 진행을 하라고 떠 밀었다는 사실때문이 아니라 한선배와 내가 같은 조라는 연대감에서 오는 하나의 불쾌감 때문이었다. 즉 불행하게도 하필 한선배가 명단에 포함됐다는 반감때문에.

몇 분후 갑자기 이소영씨가 문앞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나는 그녀를 따라 밖에 나갔다. 표정이 전과 달랐다. 그녀의 첫마디가 “전혀 의외였는데” 하며 나를 쳐다본다. 그때만 해도 나는 사실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 알고 있느냐고 오히려 물었다. 난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판매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녀의 표정과 더불어 몇마디 암시적인 용어가 드디어 나를 일깨웠다.

“각오가 다 돼 있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순간 마음이 딱 굳어지면서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정부장이 승강구에서 나오면서 나를 부르더니 기술부 방에 가서 조용히 얘기했다. “편제부에 김준범씨와 한중범씨 둘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당분간은 행동을 조심하라”고 말하고는 눈에 얼룩이 졌다.

드디어 올 것은 오고야 말았다.

한 시대의 역사를 마비시키고 국민을 우롱하며 몇몇 야심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론을 장악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바로 그런 엄청난 일을 진행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언론에 대한 철두철미한 해부를 자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에게 이롭지 않은 모든 것은 일단 저해요인으로 규정하고 무차별 처단해버릴 것이다. 소위 ‘숙정’이라는 이름으로 대단위 숙청을 일삼고 있다.

국장이 불러서도 별로 할 말이 없다 한다. 정부장 말과 거의 비슷하다. 이미 결정이 나자 어떤 사람은 의식적으로 피하는 자도 있었다. 서글픈 일이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럴 수 없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그렇게도 변해버릴 수 있을까.

골뱅이 집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술을 마셨다. 이희준 위원과 더불어 11시 전까지 마시고 노, 이선배와 따로 한잔씩 하고 택시로 귀가. 동생들에게 말할 수도 없고 필요도 없다. 골뱅이 집에서 유균선배의 말이 가슴을 친다. “우리는 꼭 만나야 한다.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친동생, 친형이란 마음으로 서로 만나자. 무언가 방법을 강구해보자.”

성선배, 노선배 모두 비슷한 말을 하며 위로한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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