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하고 언론을 장악하는 과정에 언론사 사주, 언론인 출신 관료 등 전·현직 언론인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신군부의 정권장악이 이뤄진 지난 80년과 81년 사이에 청와대, 문공부, 국회 등 정·관계 요로에 진출한 인사만 36명이다. 이같은 수치는 박정희 정권이 영구집권을 준비하기 위해 벌인 ‘유신’ 직후에 정·관계에 진출한 언론인 38명에 버금가는 것이다. 그만큼 독재정권의 이해와 맞물려 언론인들이 그들에 적극 동조하거나 아니면 적극적인 입신의 계기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신군부세력에 동참한 전·현직 언론인들은 세가지 부류로 분류된다. 첫째는 언론인 대량해직과 언론사통폐합에 가담한 언론인들이고 둘째는 전두환씨의 정권창출 도구였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와 ‘국가보위입법회의’에 동참했던 언론인들을 들 수 있다. 세째는 음으로 양으로 신군부에 추파를 던지다가 국회의원, 청와대 비서진 등으로 발탁돼 관직을 얻은 언론인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세부류에 포함되는 전·현직 언론인들은 과정이야 어쨌든 역사의 단죄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신군부 세력에 적극 동조한 인물이라는 멍에를 벗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대부분의 인사들은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그 위치만큼의 실력을 행사하고 있다.

7백여 언론인을 언론사에서 쫓아내고 수많은 언론사의 문을 강제로 닫아버린 전대미문의 언론학살에 적극 참여한 언론인으로서는 단연 허문도씨가 꼽힌다. 신군부의 언론학살은 당시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이던 허문도씨가 언론인들과 언론학자들의 ‘조언’을 빌어 진행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9년 언론청문회에서 의원들이 ‘건전언론육성 종합방안’이 허씨에 의해 입안됐다고 주장했다. 허씨는 64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해 74년 동경특파원, 79년 외신부 차장을 지낸 인물이다. 허씨가 만든 ‘언론학살’계획을 집행했던 당시 보안사 언론검열단 보좌관 이상재씨는 현역 의원(민자당 충남 공주)이다.

국보위와 입법회의에 참여한 언론인은 모두 다섯명이다. 국보위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 언론인은 당시 문공부 장관이었던 이광표씨. 이씨는 한국일보 기자출신으로 73년 중앙일보 편집국장 대리까지 지낸 인물이다. 이씨는 5.6공을 거치는 동안 연합통신 사장(86~87년), 서울신문 사장(87~88)을 지내며 신군부 후광을 계속 입었다.

신군부 집권의 기초가 됐던 ‘입법회의’에는 김윤환, 남재희 당시 국회의원과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 이원경(합동통신 회장), 이진희(문화방송 경향신문 사장)씨등 언론사 대표 세명이 참여했다.

현재 집권 민자당 대표인 김윤환 의원은 조선일보 미국특파원과 편집국장 대리를 지낸 인물이고 남재희씨는 조선일보 정치부장과 서울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이다. 방우영 당시 조선일보 사장은 현재 조선일보 회장이고 이원경씨는 5공시절 외무부장관(83년), 6공에선 주일대사(88년~91년)를 지냈다. 이진희씨는 81년 MBC 사장을 거쳐 현재는 민자당 의원(경기 용인)이다.

당시 민정당 소속으로 11대 국회에 진출한 언론인도 줄잡아 10여명을 넘는다. 김용태(조선) 김진배·유경현(동아) 박원탁·정남(경향) 심명보·염길정(중앙) 이민섭(서울) 하순봉(MBC)씨 등 언론사에서 편집국 간부를 지내거나 편집국장 등을 지냈던 이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했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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