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쿠데타와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 여론이 드높다. 언론도 앞다투어 엄중한 ‘책임자 처벌’과 철저한 ‘과거 청산’을 소리높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언론은 5·18 과거 청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언론은 무력을 앞세운 신군부의 정권 찬탈에 무죄임을 자신할 수 있는가. 80년 언론의 모습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하고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에 맞서 저항한 많은 언론인들과 이에 대한 신군부의 가차없는 탄압이 80년 언론의 한 얼굴이라면 80년 5월의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붙이고 신군부의 등장을 앞다투어 ‘찬양’한 또 다른 얼굴이 있다.

한 역사가는 “역사의 심판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말했다. 이제 5·18쿠데타는 역사의 심판에 올려지게 됐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언론의 과거청산 역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언론인 자율정화’라는 이름하에 행해진 언론인 대량 해고문제는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있다.

많은 해직언론인들이 복직되지 못하고 있으며 해직언론인들에 대한 명예회복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건전 언론 육성’이라는 미명하에 이뤄진 언론사 통폐합문제는 소송등을 통한 원상회복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광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하고 신군부의 권력 찬탈을 미화한 언론의 원천적인 과오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언론의 과거청산 그 과제를 살펴본다.


80년 광주를 유혈의 바다로 만들었던 신군부는 5·18 광주 학살에 뒤이어 ‘언론대학살’ 작업에 착수했다. 이 대학살을 주도한 당시 허문도 국보위 문공분과위원장은 “언론을 장악해야 천하를 장악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언론 대학살은 두 방향으로 진행됐다. 신군부에 저항적인 기자들에 대한 대량해직과 언론통폐합으로 구체화됐다.


기자 대량해직

기자들에 대한 대량해직은 80년 7월 29일과 31일 두차례에 걸친 신문협회·방송협회·통신협회 등 3개협회의 ‘자율정화’ 결의라는 미명하에 진행됐다. 같은 해 8월 2일 중앙매스컴이 기자·PD 등을 대량해고시킨 것을 시작으로 4일 합동통신, 9일 동아일보, 10일 한국일보 등 며칠 사이에 전국 37개사에서 7백17명이 해직됐다.

신군부가 1차 표적으로 삼은 언론인은 5·17을 거치면서 검열거부 및 제작거부에 동참한 기자들이었다. 이들에 대해선 보안사가 각 언론사에 해직대상자를 지목해 통보했다.

여기에 언론사의 끼어넣기가 이뤄졌다. 88년 국회 5공 청문회에서 이철의원이 이수정 당시 문공부 공보국장이 작성한 ‘언론인 정화결과’를 공개하면서 언론사 사주가 이들 외에도 자발적으로 전체 해직자의 60%에 해당하는 4백27명을 추가로 해직시켰다고 밝혔냈다. 언론 사주들이 신군부의 언론인 ‘정리작업’에 편승해 일부 껄끄러운 언론인들을 축출했다는 혐의를 샀다.

해직 언론인들은 84년 3월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를 결성했다. 6공 들어 국회청문회등을 통해 80년 신군부의 폭압적인 조치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해직공무원들에 대한 보상등이 구체화되는 가운데 해직언론인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해직언론인협의회는 89년 2월 ‘전국해직언론인원상회복협의회’로 재편됐다.

89년 10월 당시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평민 민주 공화 야3당의 합의하에 ‘80년 해직언론인 보상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90년 1월 3당합당으로 무산돼 버렸다.

한편 원상협등의 복직투쟁과 병행해 언론사별 해직기자들은 법적 소송등을 제기, 원상회복실천에 들어간다. 80년 경향신문, 문화방송 해직기자 34명은 89년 5월 9일 서울민사지법에 “80년 대량해직 사태는 5·17쿠데타 주모자들의 강제해고에 따른 것으로 특별한 해직사유가 없고 인사규정에 따른 것이 아니므로 무효”라며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그 이후 해직기자들의 해고무효소송과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뒤따랐다. 경향신문 문화방송 해직자들은 1심과 항소심에서 27명이 승소했으나 93년 5월 대법 최종판결에서 전원 패소당했다. 재판부는 “강박상태에서 해고가 이뤄져 해고가 무효란 점을 인정하지만 그동안 9년이 지나도록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판결요지를 밝혔다.

결국 서울신문의 송효익씨가 승소한 경우를 제외하고 3백여명에 이르는 해직자들은 재판에서 전원 패소해 현재까지 복직과 배상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6공 들어 상당수 해직언론인들에 대해 언론사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복직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들 복직언론인들은 해직기간에 따른 호봉상의 불이익은 물론 해직기간에 대한 어떠한 배상도 받지 못했다. KBS와 MBC가 해직언론인들에 대해 해직기간에 해당하는 평균 임금의 60%와 40%를 준 것이 그나마 예외적인 조치였다. 복직 언론인의 숫자마저 정확하게 집계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언론사 통폐합

80년 11월 14일 신문협회와 방송협회는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 전국 언론사의 통폐합을 통한 구조개편을 실시할 계획임을 알렸다. 두 단체의 결의문에 따라 64개 언론매체 가운데(신문 28개, 방송 29개, 통신 7개사) 신아일보를 비롯한 신문 14개사, 동양방송(TBC)을 비롯한 방송 27개사, 합동통신을 비롯한 통신 7개사의 매체가 통합됐다. 통폐합의 과정에서 다시 3백5명의 언론인이 해직되기도 했다.

언론통폐합과 관련, 중앙일보가 TBC 반환소송을 91년 11월 7일 제기한 후 94년 12월 2일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며, 동아일보가 동아방송 반환소송을 94년 7월 14일 제기한 후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에 있다.

중앙일보의 소송에 대해 1, 2심 재판부는 “국가의 불법성은 인정하나 취소권 시효가 완성됐다”며 패소판결을 내렸다. 동아일보의 소송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당시 포기각서 작성등이 의사결정 자유를 완전 박탈당한 상태라고 보기 힘들다”는 등의 이유로 역시 패소판결을 내렸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