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분쟁을 둘러싼 논란은 언론의 관점이 중요하다. 자칫하면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쌍방의 대립과 충돌 정도로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냉철하고 예리한 비판의 ‘칼날’이 필요한 이유다.

교육계가 상지대학교 정이사 선임 문제에 숨을 죽였던 이유는 대한민국의 사학 문제와 관련해 상징적인 대학이기 때문이다.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은 1993년 ‘사학비리 백화점’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퇴진한 인물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위원회(사분위)’는 8월 9일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17년 동안 복귀를 허용하지 않았던 상지대 부패재단의 복귀를 결정했다. 김 전 이사장이 직접 정이사로 선임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들을 정이사로 선임하면서 족벌경영의 길까지 열어놓았다.

부패 교육세력의 복귀라는 상징적인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의 바람직한 대응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안의 본질은 무엇인지, 교육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한겨레는 8월10일자 1면에 <사분위, 상지대 ‘비리재단’ 복귀시켰다>, 6면에 <아전인수 잣대로 ‘비리사학 세습’ 용인>라는 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은 3면에 <또 ‘비리재단’ 편들기…멀어지는 사학민주화>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일보는 8면에 <사실상 비리재단 복귀…분규 재점화 할 듯>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9일 서울 도렴동 정부중앙청사에서 상지대 구재단측(김문기)이 추천한 인사 4명을 정이사로 선임키로 확정했다. 이에 격분한 상지대 교수, 학생대표들은 “나라가 개판이야! 너무 억울해!”라고 울부짖으며 농성을 벌이다가 학생 3명이 경찰에 강제연행됐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러한 보도에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비리재단 복귀로 보는 언론사 시각이 담겨 있다. 상지대 사태의 결과를 불러온 배경은 언론이 짚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사학분쟁을 조정하라고 만든 사분위가 조정기능을 상실한 채 편향된 결정을 내렸다. 지난 2월 ‘뉴라이트 학부모연합’ 공동대표 등 보수성향 인사로 사분위원(전체 11명)이 물갈이 됐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이다.

사분위 결정을 손놓고 지켜본 교과부는 상지대 사태를 방치한 또 하나의 공범이다. 민주사회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 교수 3단체는 10일 성명에서 “교과부는 사분위 결정에 재심할 수 있음에도 이 중대한 권한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상지대 사태를 조용히 지켜보는 언론들도 있다. 동아일보는 8월 10일자 12면 기사제목을 <상지대 17년 임시이사체제 끝나나>라고 뽑았다. 기사 첫 문장은 “상지대가 임시이사 체제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시작했다. 학교가 정상화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장이다.

조선일보는 8월 10일자 12면 오른쪽 귀퉁이에 <“상지대 경영권 옛 재단에 줘야”>라는 기사를 전했다. 사분위 결정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나마 중앙일보는 17면에 <상지대, 17년 만에 정이사 체제 전환 갈등>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중앙의 기사 제목은 조선 동아와 달랐지만 그동안 중앙 보도태도를 고려할 때 판단은 달라진다. 중앙은 지난 한 달간 상지대의 ‘상’자도 지면에 담지 않았다. 결과만 전했을 뿐이다.

조중동은 그동안 사학재단 이해 요구를 대변하는 논조를 보였다. 사분위 결정은 조중동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행동이일 수도 있다. 사분위 결정에는 사학을 사유재산으로 보는 조중동의 시각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사분위 결정은 사학분규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비리재단이 어깨를 피고 있는 형국이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자유선진당 등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9일 성명에서 “사분위 결정은 분쟁조정이 아니라 분규의 장으로 학내 구성원들을 내모는 반교육적 행위”라면서 “교육현장에서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가능한 방법을 시민사회, 지역사회, 학내구성원 등과 함께 찾아 나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사분위는 분규사학을 정상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데, 상지대라는 정상화 된 대학을 분규상태로 끌어가는 최악의 결정”이라며 “사분위 결정으로 상지대 진실을 숨기는 ‘부패동맹’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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