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건을 보도하는 한국언론의 고질적 병폐의 하나로 ‘떼거리 저널리즘’ ‘냄비언론’의 문제가 거론된다. 말하자면 ‘왕창’ 달라붙었다가 또 다른 사건이 터지면 ‘언제 그랬느냐’며 다른 데로 우르르 몰려가는 식의 보도태도를 말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보도태도 또한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일보노조는 12월 1일자 노보에서 노전대통령 비자금 보도태도를 지적, 눈길을 끌었다.

이날자 조선노보는 1면 머릿기사 ‘비자금― 5·18법 대형사건 연발 / 우리 보도태도 반성할 점 없나’에서 조선일보를 포함한 일간지들의 노태우씨 관련 보도가 ‘질보다 양’이라는 물량위주의 보도·편집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뉴스에 따라 면을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만한 사건이 터지면 그 정도 면은 할애해야 한다”는 관행적 물량배분에 익숙해 있다보니 “거의 모든 신문이 한달여동안 주요 7∼8개면 이상씩을 털어 ‘누가 많이 기사를 쓰느냐’하는 ‘이상한 경쟁’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조선노보는 또 사실 이상으로 확대 보도하는 ‘뻥튀기식 보도’, 속보경쟁에 치우친 ‘앞서가기 보도’, 여론에 편승하는 ‘여론동원하기’, 사건 관련자에 대한 ‘인민재판식 보도’도 재연됐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이 검찰의 브리핑 과정에서 “김옥숙씨도 소환할 계획이 있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검찰이 “김씨도 비리가 발견되면 소환할 수 있다”고 답변하면 다음날 거의 모든 신문이 “김옥숙씨 곧 소환”이라는 식의 기사가 양산됐다는 것.

또 한 신문이 정신과 의사의 분석을 빌려 “노태우씨는 가난한 집 출신이고 편모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돈에 대한 집착이 많을 것”이란 기사를 내보내 독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는가 하면 또 다른 신문은 “원래 부잣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재물에 대한 욕심이 크다”고 기사를 쓰는등 ‘제멋대로’의 심리분석이 돌출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조선노보는 언론의 이같은 보도태도의 요인으로 현장 기자의 판단을 중시하기 보다는 위로부터 기사량과 방향이 결정돼 떨어지는 ‘형식론적인 신문제작’과 지나치게 타 언론사를 의식하는 ‘물량위주 경쟁’을 꼽았다. 조선일보 자사의 지면 분석과 관련해선 비교적 “이런 류의 기사를 자제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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