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그맨 유세윤이 프로듀서 뮤지와 결성한 그룹 ‘UV’가 자신들의 2집 앨범을 팔겠다며 모 홈쇼핑 채널에 등장, 화제를 낳은 바 있다. 음반을 홈쇼핑에서 판다는 설정 자체도 황당하기 그지없는데, 평소 당당하고 거침없는 유세윤의 모습과 다르게 ‘확실히 긴장한’ 모습으로 등장해 아무런 정보 없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이들에게 의아함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시작된 케이블 채널 엠넷의 . 알고 보니 ‘UV’의 홈쇼핑 출연은 방송의 일부였으며 유세윤은 홈쇼핑에 ‘UV의 멤버로서’ 등장했던 것이다. 뮤지션 유세윤으로 등장했다는 말인데, 도대체 시청자들이 본 유세윤의 어색한 모습은 무엇 때문인가. 설정인가.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에는 진심이냐, 설정이냐, 정말 파는 거냐 등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결론은 100% 설정이다. 케이블 채널 엠넷의 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에서 단순히 ‘페이크 다큐’라는 말로 을 온전히 정의할 수는 없게 된다. 의 세계는 쉽게 말하면 유세윤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정체성(개그맨과 뮤지션) 중에서 ‘뮤지션이라는 정체성만 남아있는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페이크 다큐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개그맨으로서 유세윤을 구성하는 세계는 사라지고, 오로지 ‘천재 뮤지션’ 유세윤의 세상만이 남는데, 이게 ‘농담’(일종의 ‘낚시’)의 시작이다.

에서 재밌는 점은 유세윤이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등에서 활동한 ‘천재’ 뮤지션이라는 뻔뻔한 거짓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이 흥미로울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인식하던 ‘세계’를 다르게 해석했다는 점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자체 완결성을 가진다.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고, 예능도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리얼’이란 특징을 통해 외부 세계로의 확장성을 지니게 됐지만 실명으로 등장하는 특성상 MC 유재석과 강호동이라는 실제 인물의 경계를 벗어나진 못한다. 어디론가로 떠나도, 무엇에 도전해도 그들이 강호동, 유재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은 이런 경계를 허물고 캐릭터가 그를 둘러싼 공간과 끊임없이 충돌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등장 인물 유세윤의 아이덴티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유세윤이 ‘실제로’ 결성한 그룹 UV는 활동하고 있지만 (너무 웃긴 나머지) 그게 진심인지는 의심스럽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삽입된 그룹 UV에 대한 칼럼니스트 김태훈이나 강명석 기자의 호의적 평가는 충분한 타당성을 갖고 있다. 그렇게 은 진실과 거짓말을 섞어 놓음으로써 모두가 거짓말이 되는 페이크 다큐의 인식적 한계를 벗어나며 농담이라는 재료에 진실이란 접착제를 사용, 좀 더 농담의 볼륨을 키워가는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유세윤은 의도적으로 지워진다. 의도적으로 지워진 개그맨으로서의 정체성은 분위기로 남기고(지워진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실제인지 의심스럽지만 존재하는 그룹 UV를 주인공으로 실제처럼 가공된 상황을 찍는다는 의 페이크는 이렇게 중첩되어 있다.

여기서 생기는 충돌의 파괴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형식과 내용의 유연성은 그 어떤 민감한 이슈도 부담 없이 흡수한다. UV신드롬 1회에서는 표절 문제와 연예언론의 문제점, 2회에서는 음반 유통 구조와 방송 의존적 산업 구조, 3회에서는 방송 심의 문제, 4회에서는 아이돌 인권 문제까지 폭넓게 소재로 삼아 요리한다. 은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 포맷에 있어서 형식적인 성취를 이뤄냈다는 점 이외에도 그 성취의 기반 위에 어떤 재료들을 올려놓아야 하는지 또한 잘 알고 있는 프로그램이라 볼 수 있다.

케이블 프로그램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보수성을 띨 수밖에 없는 공중파 프로그램과는 달리 여러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하다. 물론 내용에 있어서 상업성과 그를 위한 선정성이라는 필연적 단점도 아울러 노출하고 있지만, 적어도 프로그램의 형식을 구성하는 요건인 ‘포맷’에서 만큼은 공중파가 보여주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능성들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포맷의 장점은 모든 것을 ‘거대한 농담’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이다. 가장 최초의 출발점인 구성 자체의 경계가 모호한 농담인데 주변 상황이 부조리하다고 해서 진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실 진지해지지도 않을 뿐더러 소재로 쓰이는 순간부터 이미 풍자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점이 이후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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