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말 사랑병’에 깊이 빠진 언론이 참으로 안타깝다. 언론은 대중의 말글살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므로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신문과 방송의 외국말 남용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일간지의 속지 제호만 살펴 보아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중앙), (동아), (동아), (조선), <영 페이지 Magazine X>(경향) (한국)….

주·월간지 제호도 마찬가지다.

<뉴스피플> <라벨르> <영레이디> <뉴스메이커> <쉬즈> <하이틴> <퀸> <우먼리빙> <시티라이프> <핫뮤직>….

아무리 살펴보아도 우리말 제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조선일보사는 <가정조선>을 슬그머니 로 바꾸었고, 중앙일보사도 <월간중앙>을 으로 바꿔 재창간했다.

동아일보사는 최근에 내놓은 시사주간지와 여성지 이름을 각각 라고 했다.
한겨레신문사도 영상주간지를 <씨네21>로 했다.

신문의 고정 연재물 제목도 마찬가지다.

<뉴스 인덱스> <월드뉴스 라인> <영어 클리닉> <줌업> <뉴홈 뉴패밀리> <핫스타> <톱 매니지먼트> <오늘의 골든프로> <핀업걸> <쇼핑 가이드> <포린 북스> <스코어보드> <월드 포커스>….

언론에서 주최하는 행사의 명칭도 외국말 투성이다.

<푸른정신> 하면 될 것을 <그린정신>으로, <대청결 운동>을 <클린업 운동>으로, <청소년 환경봉사대>를 <그린 스카우트>로 부르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전광속보판 이름을 각각 라고 했으며 한국일보는 자사의 전산제작 체제를 <그린네트>라고 했다.

물론 외국말을 섞어쓰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중의 관심을 잡기 위해서는 부득이 시선을 끄는 표현을 찾게 마련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말이 더 자극적이고 강렬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있다는 판단에서 우리말을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같은 논리로 우리말을 훼손하는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언론에서 외국말을 써버릇하면 우리말이 녹슬고 잊혀지고, 외국말이 점점 늘어나서 우리말 낱말은 줄어들 것이다.

아울러 은연 중에 외국 것을 숭상하고 우리 것을 업신여기는 사대사상이 스며들고 만다.
그러다보면 사고방식이나 표현방법이 달라져서 남의 사상의 노예가 되고 우리 겨레의 얼과 주체성까지도 잃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의미와 사건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외국말을 쓰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말로 쓸 수 있는 것도 버젓이 외국말로 표현하는 일은 겨레문화에 대한 반역이다.

한켠에서는 자녀의 이름을 한글로 짓고, 상호와 상품 이름을 우리말로 정하는 일이 늘고 있다. 그런데도 언론이 우리말을 찾아 쓰는 성의를 보이기는 커녕 앞장서서 외국말을 남용해서야 되겠는가.

요란한 외국말 제호를 쓰지 않더라도 내용을 충실히 하여 승부를 건다면 판매부수는 얼마든지 늘 것이다.

언론은 ‘세계화’라는 헛구호에 휩쓸리지 말고 외국말을 짝사랑하는 얼빠진 짓을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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