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검열을 거부하고 제작거부에 참여하다 7백여명의 언론인들이 해직 아직 3백여명은 복직이 안된 상태로 남아있다. 5·18 내란행위자에 대한 처벌과 광주 학살 진상 규명등과 함께 이들 해직언론인에 대한 명예회복 조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회장 이경일)는 4당 대표를 만나 5·18특별법에 해직언론인을 비롯한 신군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방안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5·18 당시 경향신문 외신부 부장으로 언론사 부장급 간부로서는 유일하게 제작거부에 참여했다가 옥고까지 치른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이경일회장(현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16일 문화일보 논설위원실에서 만났다.

―먼저 당시 상황을 좀 얘기해 주십시오.

“19일부터는 광주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보도가 들어오자 정부는 전화까지 단절시켜 버렸다. 우리는 외신을 통해 광주의 상황을 접했다. 당시 하루 4백50∼5백건 가량의 외신중에서 50건에서 많게는 1백건 가량이 광주사태일 정도로 이 문제는 국제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내가 있던 경향신문도 이와 관련해서는 한줄도 보도할 수 없었다. 각 언론사 앞에는 탱크가 서 있었고 편집국 입구에는 집총한 두명의 군인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진실을 전할 수 없는 엄혹한 상황에서 제작거부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5월 27일 신군부가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며칠후인 6월 9일 이회장은 당시 서동구 경향신문 조사국장과 노성대 MBC 보도부국장, 홍수원, 박우정, 표완수, 오효진, 심송무기자등 경향, MBC, 동아일보 기자들과 함께 연행돼 구속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계엄사는 이들 언론인들이 “외부 불순세력과 조직적으로 연계해 악성 유언비어를 유포시켜 국론통일과 국민적 단합을 저해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등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것은 “고려연방제등을 찬양했다”는 것이었지만 유언비어 유포혐의의 대부분은 광주에서의 계엄군의 만행과 관련한 보도못한 ‘진실’들이었다.

당시 심정에 대해 이회장은 “제작거부로 처벌한다면 모르겠지만 대외에 용공분자, 사회혼란분자로 발표하며 빨갱이로 몰아붙이는데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동안 해직언론인 배상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계속해 왔는데요.

“89년 70년대 80년대 해직기자들이 연대해 ‘해직언론인 원상회복협의회’를 구성하고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었지만 3당통합이 되면서 무산됐다.

이외에도 각 사별로 해고무효소송을 하고 1, 2심에서 승소했는데도 불구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는 인정하나 해직은 유효하다’는 어정쩡한 판결을 내려 패소하고 말았다. 왜 당시에 소송을 걸지 않고 9년이나 지나 소송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해직기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내면 전원 구속하라’는 방침이 내려진 시기였다.”

―이번에 4당 대표를 만나셨는데.

“4당 대표를 만나 5·18특별법에 80년 해직언론인을 비롯한 신군부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우리의 의견에 적극 동의했으나 신한국당은 우선 학살자 처벌이 급선무라며 확답을 하지는 않은 상태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87년 대선때 ‘광주사태 희생자들에 대해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배상을 해 주겠다’는 공약을 했었던만큼 이번에 이 문제를 꼭 특별법에 상정해 명예회복 조치를 비롯한 배상을 해줘야 한다.”

―5·18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어떤 신문도 우리의 일련의 움직임조차 보도하지 않는다. 물론 당시 TBC나 동아방송 등 정부에 강제로 빼앗겼던 개인재산에 대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함께 군부의 야만적인 양민학살에 대해 항의하다 해직된 언론인에 대한 배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선배와 동료, 후배 기자들이 당한 것을 외면하는 요즘 언론인들의 양식이 의심스럽다. 우리의 주장과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대로 보도하고 논평하길 바란다.”

이경일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회장은 해직언론인에 대한 명예회복과 실질적인 피해배상을 하라는 요구는 역사바로잡기의 일환이라며 “만약 이번 특별법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각오로 15대 16대 국회에 계속적으로 요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