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포악한 통치자로 연산군과 전두환을 꼽은 적이 있다. 물론 두 사람은 다른 시대 환경과 정치제도에서 살아간 인물이지만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욕망을 달성키 위해 무고한 국민을 죽이거나 투옥했다는 점에서 같다. 또 두 사람은 통치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 유지에만 급급했지 아무런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점도 닮았다.

우리의 역사는 연산군을 용납한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조선조가 한창 제도와 문화로 안정을 다진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도 그런 폭압을 일삼고 역사의 진전을 되돌려 놓았었다.

전두환씨가 등장한 시기는 바로 반민주적이요, 반역사적인 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분위기가 성숙한 단계였다. 그런데도 그 일당의 집권을 위해 민주세력을 말살하고 역사의 발전을 가로 막았다.

전두환씨와 그 일당의 처벌을 그동안 민주세력들은 꾸준히 요구해왔다. 이에 김영삼정부에서는 5·18특별법을 만들어 과거 청산작업을 벌이겠다고 했다. 때가 늦었지만 이 발표가 있던 날 나는 맥주잔을 연거퍼 들어올리며 모처럼 승리자인양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정치적 복선이 깔렸다느니, 깜짝쇼라느니 떠든다. 더욱이 특별검사제를 관철키 위해 장외투쟁도 벌이겠다고 한다. 이런 말과 주장이 일리가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다. 친일파 문제는 반민특위까지 만들었지만 50년이 넘어도 청산을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러니 전두환과 그 종범들을 실정법으로 처벌하겠다는 의지가 표명된 것은 우리 민주 민중사에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상채기를 내거나 흠집을 잡기보다 무조건 박수를 보내야만 할 것이다.

또 한 소리가 들려온다. 공범들의 공소시효가 부분적으로 끝났다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겠다고 하니 그 소원을 냈던 측에서 취하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지만 이런 법률기관의 공소시효 해석은 너무나 형식 논리에 치우쳐져 있으며 그 소원을 취하한것은 엄숙해야 할 국민적 심판에 재를 뿌리는 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심판에는 공소시효도 없으며 소원취하도 있을 수 없다. 역사의 기록은 엄정하다. 시비와 사정을 가려 가치중립의 기준에서 발전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특히 근대사학은 반역자의 범위를 넓게 잡는다. 예전에는 민족 또는 왕조를 배반했을 적에 반역자로 규정했으나 오늘날은 민주민중의 이익을 저버리거나 반통일적 행위를 포함시킨다. 전두환과 그 일당은 이 나라 통일의 성취와 민주 발전을 가로막는 마(魔)의 집단이었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 역사의 통사를 쓰고 있다. 앞으로 나는 이렇게 쓸 것이다. “전두환과 그 일당은 군사반란의 수괴로 무고한 시민을 무자비하게 살육했으며 무수한 민주인사를 감금토록 했다. 그리고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무기로 통일을 저해했다. 이런 일련의 진행속에 개인 가족 집단의 이익만을 챙긴 반동 정권이었다. 적어도 결정적 민주발전의 시기를 몇십년 후퇴시켰다.”

실정법의 처벌은 일시 신체에 가해지는 것이지만 역사의 심판은 영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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