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에서 한국 외교관(국정원 요원)이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다 추방됐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국익을 고려해 보도시점을 연기해달라는 외교통상부의 엠바고 요청을 기자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부 기자들은 당초 엠바고를 유지하려 했으나 '국정원 요원 추방 사실'이 이미 현지 아랍계 언론에서 보도됐다는 소식(미디어오늘)이 알려진 뒤 이날 부로 엠바고를 해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앗샤르끌 아우싸트 등 최근 보도된 아랍 언론들을 보면 리비아 정부보안 당국이 지난달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이 리비아 정부요인 정보수집, 무아마르 알 가다피 국가원수의 국제원조기구 조사, 가다피 원수의 아들이 운영하는 아랍권내 조직에 대한 첩보활동을 한 사실을 파악하고 한국정부에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반해 국내 언론에서는 '한국-리비아 말 못할 무슨 사정이 있나' '양국관계 이상기류' 등의 모호한 표현만을 사용할 뿐 현지에서 한국 국정원 요원(외교관)의 추방 소식을 알리지는 않았다. 대신 지난 23일 MBC의 첫 보도로 시작된 한국인 선교사 구아무개씨와 농장주 최아무개씨가 각각 지난달 15일과 이달 초 구속됐다는 소식은 간헐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외교부는 이들이 구속됐는지,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 교계(선교협의회) 등 일각에서는 외교부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이런 의혹을 낳은 직접적인 이유는 국내 언론이 외교통상부의 요청으로 엠바고를 받아들여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최근 외교부 기자들에게 엠바고를 전제로 국정원 요원이 추방됐다는 사실을 알리고 한국 대표단과 원만한 협의가 이뤄질 때까지 보도유예를 요청했다. 기자들은 한국인 선교사와 교민의 안전이 달린 문제인 점과 국익 등을 고려해 이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 현지 아랍언론 캡쳐  
 
외교부는 리비아 정부의 한국 국정원 요원 추방 사실과 선교사·교민의 구속 사실은 별 건이며, 전자의 경우 우리 대표단이 원만한 협의를 이끌기 위해 노력중인데 비해 후자는 아직 접촉도 못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현지 교민과 선교사의 안전이 달린 문제의 전말조차 어떻게 된 것인지,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알려져있지 않은데다, 이들의 구속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정원 요원의 정보활동 추방 소식에 대해 이미 현지 아랍언론이 연일 보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이런 정보를 마냥 엠바고로 묶어두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가 뭔가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김영선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국익과 관계된 사항으로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외교관(국정원 요원) 추방 문제를 협의하는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그 때까지만 연기해달라고 협조 요청을 했던 것"이라며 "협의가 막바지이므로 이번 주 중 정리되면 바로 (엠바고를) 풀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현지 언론에 다 보도됐는데 엠바고의 실익이 무엇이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 김 대변인은 "보도될 경우 피해보는 것은 우리"라며 "우리와 리비아의 각종 협력사업과 프로젝트가 단절되거나 무효화될 수 있어 결국 우리만 손해보게 된다"고 해명했다.

국내 정치적으로 불리해질 우려가 있어 국민들에게 은폐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지적에 김 대변인은 "그런 것은 아니다. 은폐할 이유가 없다"며 "이미 정보활동이라는 것은 언론에 알리고 협조를 구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편,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단은 27일 회의를 열어 이날 오후부터 엠바고를 더이상 유지하지않고 해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김기수 내일신문 기자는 "당국에서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기자단에 엠바고를 요청했고, 기자단은 회의 통해 설득력있다고 판단해서 수용한 것"이라고 밝힌 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계된 사안이라면 더욱 전말을 국민에 알렸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외교부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언론에서 이미 보도된 사안이라는 점에 대해 김 기자는 "거의 몰랐다가 오늘 아침에 조금씩 알려진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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