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처와 방송사 모두 국내 영상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립 프로덕션이 활성화돼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다. 독립 프로덕션의 활성화는 기본적으로 방송 프로그램 송출권을 쥐고 있는 방송사들에 달려 있다. 케이블 TV 시대가 열리면서 독립프로덕션의 입지가 한층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공중파 방송 3사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방송사들은 독립 프로덕션을 키워야한다는데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만 정작 이들 프로덕션의 프로그램을 사주는데는 지극히 인색하다. 이같은 현실은 독립 프로덕션의 활성화를 위해 ‘강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방송사들의 ‘외주제작비율’마저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은데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방송법 시행령 29조 3항에는 방송사들이 매주 ‘2% 이상 20% 이내’에서 ‘외주제작’ 프로그램을 방송토록 고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비율은 매년초 공보처장관의 고시에 따라 결정되고 있으며 올해엔 15%다.

지난 92년부터 시행된 이 법률은 시행초기 방송사들의 자회사 설립 붐으로 입법취지를 무색하게 한채 변형되고 말았다. KBS 제작단, KBS 영상사업단, MBC 프로덕션, SBS 프로덕션 등 이른바 방송사들의 자회사들이 대다수의 외주프로그램을 수주하면서 실제 독립 프로덕션에게는 겨우 생색을 내는 정도의 제작의뢰만 있었던 것이다.

공보처는 급기야 지난 94년 봄철 프로그램 개편 때부터 독립프로덕션에 맡겨야 할 비율을 분리, 고시했다. 이에따라 올해 적용된 독립프로덕션의 외주제작비율은 5%. 전체 15% 가운데 5%만 원래적인 의미의 외주제작이 이뤄지고 나머지 10%는 방송사가 출자를 해서 만든 자회사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KBS는 지난 상반기에 25개 프로그램을 외주제작에 맡겼다. 이 가운데 KBS 제작단 등 자회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12개, 인디컴, 제일영상 등 독립프로덕션이 만든 프로그램이 13개다. 외형적으론 독립프로덕션이 납품한 프로그램이 더 많다. 그러나 제작비로 비교해 보면 자회사가 전체 외주제작비 50억원 가운데 33억6천여만원으로 67%에 달하고 독립 프로덕션은 33% 수준인 16억5천여만원에 그치고 있다. 독립프로덕션들이 수주하는 프로그램들은 비교적 돈이 안드는, 소규모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독립 프로덕션에서 납품받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이른 아침 시간이나 밤늦은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다. SBS는 매주 9백25분을 외주제작 프로그램으로 편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자회사인 SBS 프로덕션에서 5백60분을(60.5%), 제3채널 등 독립 프로덕션에서 3백65분(39.5%) 정도의 프로그램을 납품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 프로덕션이 납품하는 17개의 프로그램 가운데 주요 시청시간대에 자리를 잡은 것은 서울채널의 ‘TV인생극장’과 TV전파왕국의 ‘농구대통령’ 단 두개에 불과하다. 할애시간도 불과 65분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아침 6시에서 8시 사이나 밤 12시 이후에 방송되고 있다. 한마디로 ‘찬밥신세’이다.

방송사들도 할말이 없지 않다. 먼저 믿고 맡길만한 독립 프로덕션이 많지 않다는 주장이다. 영세한 자본, 낙후한 장비, 미흡한 인력구조 등으로 대형 프로그램들을 맡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물건’만 있다면 방송사가 이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이다.

반면 독립 프로덕션측은 “지원은 없이 물건만 내놓으라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처사”라며 반발한다. 물건이 팔릴 ‘시장’은 만들어주지 않은 채 좋은 ‘상품’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팔릴 수 있을지 지극히 불투명한 실정에서 어떻게 좋은 제품을 기획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기도 하다.

여기에 자회사 우대, 불공정한 계약관행, 비현실적인 제작단가, 시청률이 극히 낮은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편성해 주는 문제 등이 겹쳐 경쟁력있는 독립 프로덕션의 생존구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들이다. 독립 프로덕션들은 방송사들이 최소한 외주제작 비율이라도 제대로 지키고자 하는 ‘육성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팔리는 물건이 적다보니 독립 프로덕션들은 생존하기조차 힘들어져 도산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11월 초순께엔 비교적 안정적인 운영을 해온 곳으로 알려졌던 ㅇ사가 부도가 났으며 역시 중견 프로덕션인 ㅌ사도 새로운 인수자를 물색중이다.

‘방송용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독립프로덕션은 현재 1백여개사 이르고 있다. 올해부터 시작된 케이블TV와 지역민방 개국 등으로 엄청난 ‘과수요’가 예상됐고 이에따라 독립프로덕션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는 추세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올해 흑자가 예상되는 곳은 대기업 계열회사인 ㅎ사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공보처는 내년부터 독립 프로덕션의 납품비율을 봄철에 6%, 가을철에 7%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오는 99년까진 15%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을 세우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육성 의지가 제대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방송사들의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기획과 편성으로 승부를 보되 제작은 과감히 전문 프로덕션에 맡기는 방식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공보처와 문화체육부로 이원화돼 있는 관할 부처의 정비도 필요한 시점이다. 실질적인 프로덕션 육성 정책은 사실상 공보처에서 맡고 있다시피하다. 그러나 이들 독립 프로덕션들은 공보처가 아닌 문화체육부의 ‘영상음반과’에 등록돼 있다. 공보처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지만 독립 프로덕션 육성을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일관된 정책추진을 위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함께 ‘프로덕션 진흥법’ 제정등 보다 가시적이고 적극적인 육성정책이 요구된다는게 프로덕션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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