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지식채널e>는 어떻게 태어나고 진화했을까. 지난 2005년 <지식채널e>가 첫 방송을 선보이고 인기를 얻어 가는 과정에서 겪은 제작진의 ‘고군분투’를 담은 책 <감성 지식의 탄생>(마음산책)이 최근 출간됐다. 당시 산파 역할을 한 김진혁 PD가 이번엔 200여 페이지에 <지식채널e>의 ‘지식’을 담았다.

책에는 김 PD가 지난 2005년 9월 첫방송부터 2008년 8월까지 연출을 맡은 270여 편 <지식채널e>의 시작·발전·진화를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빼곡히 담겼다. 2005년 당시 이름도 없이 시작해 채널 인지도 제고를 위한 토막광고 정도로 여겨졌던 이 프로그램이 PD·작가의 손을 거쳐 새롭게 빚어지는 과정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주목되는 점은 5분간의 <지식채널e> 한 편을 내놓는데 투여되는 제작진의 땀과 노고의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온갖 인터넷 매체, 블로그, 웹문서, 카페, 게시판 등을 뒤지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하루 24시간 끊임없이 방송 ‘거리’를 찾고, 관련 자료를 뒤지는 완전 ‘막노동’을 거쳐서야 비로소 하나의 아이템을 얻는다. 

이후 2주 동안 작가가 구성을 하고, 나머지 1주 동안엔 PD가 디지털 편집·음악·효과 등의 작업을 진행한 뒤 자막 크기·위치까지 세밀하게 살피고 메시지와 재미까지 동시에 추구하는 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산고’의 고통이 끝난다.

책에는 <지식채널e>가 추구하는 두 가지 가치인 ‘소외’(minority)와 ‘실험성’에 대한 도전기가 담겨 있다. ‘황우석을 다루는 언론’의 문제를 지적한 <황우석과 경마 저널리즘>, 광우병 논란의 불을 지핀 <17년 후> 등 당대 사회 이슈를 관통한 프로그램 뒷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 <황우석과 경마 저널리즘 편> ⓒ EBS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EBS 사옥에서 만난 김 PD도 “지지고 볶으면서 만들다 보니 지금도 270여 편 모두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지식채널 e’라는 프로그램은 내게도 강렬한 그 무엇이었다”고 술회했다.  

김PD는 “뻔한 얘기를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제일 힘들었다”고 말한다. ‘지식채널 e’는 결코 머릿속 생각과 직관의 산물이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말그대로 땅을 파고, 짐을 나르는 막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작가들은 꿈속에서도 아이템을 찾고 검색을 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영혼을 갉아먹는 느낌”이라고 밝힐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다. 그러나 5분짜리 ‘작품’은 그 온갖 어려움과 고생을 순간에 잊게 했다.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는 긴장과 희열, 실험적인 도전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이 놓치고 있는, 혹은 외면하고 있는 ‘마이너리티’를 드러내줄 수 있다는 ‘희망’에 일할 맛이 났다고 한다.

김 PD는 <지식채널e>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한국 언론의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그는 “주류 언론이 굵직한 이슈 위주로 보도를 할 때 정작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해 정보 소외를 겪는다”며 “우리가 그런 부분을 다뤄줄 수 있어 대중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언론이 다루지 않았던 시사저널 파업 사태를 다룬 <기자>편이 그 단적인 사례로 꼽기도 했다.

그는 또 “언론이 출입처에 매몰돼 단편적인 뉴스를 내보내거나 그들만의 리그로 속보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며 “천편일률적인 보도 속에서 ‘지식채널e’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흥행비결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언론의 문제가 역설적이게도 <지식채널e>의 성장을 도운 셈이지만, 그만큼 현재 한국 언론이 언론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지 자문하게 되는 대목이다.

   
  ▲ 김진혁 EBS PD  
 
이런 점에서 김 PD가 황우석·광우병 등 사회적 이슈에 뛰어든 배경이 주목된다. 그는 “황우석 논란 당시 EBS에선 민감하고 시사적인 소재를 다루지 않는 것이 관례였고, 그것을 다룰 만한 프로그램도 없었다”면서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과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김 PD는 최근 언론 상황과 관련해 “지금의 언론 상황에 비하면 2008년 제작할 때는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전반적으로 지금은 우리 언론의 칼날이 무뎌졌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대중과 호흡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실험정신이 더 필요한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빛은 어둠이 깊을수록 더 빛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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