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김영삼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 방침이 알려지면서 정국은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물론 그것은 노태우씨 비자금을 중심으로 한 정치자금 문제에서 군사정권 자체의 청산이라는 일면 의미있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이 그동안 그토록 반대 해오던 5·18책임자처벌을 마치 오래전 부터 주장해 온 것처럼 앞장서 나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특별법 제정 방침이 발표되었을 때 일부 언론들은 김영삼대통령이 대선자금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국면전환’을 노린 것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김대통령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번에도 예외없이 방송은 김영삼대통령의 의도를 뒷받침해 주는데 손색없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중요 뉴스는 물론이고 특별법 발표 다음날인 11월 25일 KBS의 보도 기획 <역사를 바꾼다>에서부터 지난 10일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이르기까지 방송사는 기회있을 때마다 특집을 편성해 김대통령의 결단을 강조하거나 5·18당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이라도 방송이 5월학살을 제대로 조명하겠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방송사들이 5·18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뉴스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단어가 있다. 그것은 김대통령의 <대선자금>이란 단어다.

비자금 파문으로 들끓게 했던 노태우씨가 지난달 16일 구속되면서 특별법 제정 방침이 발표되기까지 일주일동안 김대통령의 <대선자금>문제는 뉴스에서 이슈가 되었고 김대통령은 이 문제가 밝혀질 경우 대통령 선거가 무효가 돼야 할 곤경에까지 처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선자금 문제가 특별법과 뒤 이은 전두환씨의 구속, 그리고 군사반란자 처벌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묻히고 만 것이다.

실제로 이달들어 뉴스에서 대선자금 문제가 언급된 것은 지난 5일 검찰이 노태우씨 비자금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을 때 야당의 코멘트를 인용보도한 것 외에는 없다.

이날 검찰은 대선자금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했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대선자금의 곤경에서 빠져 나온 대통령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이즈음 뉴스에서는 대통령이 이런 복잡한 정치현안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국정을 챙겨가는 모습이 자주 비춰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지난 4일 서울대 이수성 총장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김수환추기경등 종교계 인사와 학계 사회단체 원로들을 청와대에서 만나면서 여론수렴에 들어갔다. 이 여론 수렴은 이번주에도 계속된다고 한다.

또 지난 7일에는 김대통령이 서울 성산대교 보수공사장을 찾는 모습이 9시뉴스에 비춰졌다. 어쩌면 정치상황이 이렇게 혼란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이런 공사장을 찾는 모습은 차라리 어색해 보인다.

뉴스는 여기다 조선(북한) 관련 뉴스를 다루면서 국민의 안보의식을 조장하려는 경향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일련의 보도는 이제 사태를 ‘정상화’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다 일련의 사법처리가 끝나면 여야영수회담이 준비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때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 또 한번 역사의 평가로 묻히는 것인가. 여전히 검찰과 언론이 진실 묻기 작업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민실위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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