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와 이유, 그동안의 경과와 절차에 눈을 감는다면, 최근 김영삼정부가 내미는 정책결정의 카드들은 정당하다. 5·18특별법의 제정이나 전직대통령의 구속등은 참으로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온 국민적 요구에 응답하는 알찬 열매이다.

한줌의 정치군인들과 수구세력이 좌파의 책략으로 몰아붙이고자 하는 ‘역사바로세우기’의 명분도, 타는 목마름을 적셔주는 단비이다. 민주와 정의를 지켜내고자 목숨마저 내던진 겨레를 ‘폭도’로 매도하고, ‘새 역사 창조의 기수 전두환장군’을 노래했던 이땅의 언론도 이제는 전혀 이론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학살의 범죄는 단죄되어야 하고, 검은 과거는 청산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국론의 분열은 없어 보인다. 모든 여론조사의 결과는 한결같이 5·18특별법의 제정과 헌법파괴 범죄자들의 처단에 압도적인 지지를 확인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8·15 이후 처음으로 국민적 요구를 받아들여 ‘역사 바로세우기’에 앞장선 오늘의 대통령은, 청사에 빛나는 대통령으로 평가돼 마땅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겨레의 반응은 ‘만세’를 합창할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거의가 착잡한 얼굴과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한마디로 간추린다면 그것은 새삼스러운 정책전환의 동기와 이유, 그리고 그동안의 경과와 절차가 보여주는 혼선과 독단에 기인한다.

김대통령, 허심탄회하게 밝혀야

헌법파괴의 범죄를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역설하며 검찰의 기소유예와 공소권없음을 이끌었던 바로 그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표변하게 된 동기와 이유는 무엇인가. 항간의 독설처럼, 대선자금 공개의 압박을 ‘정면돌파’ 하기 위한 정략인가. 아니면 진정 이제라도 역사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초각성의 표현인가. 아무래도 앞뒤를 뒤엎어버린 독단의 배경을 헤아릴 길이 없는 것이다.

겨레의 의혹과 착잡함은 독나무(毒樹)에 열린 독과일(毒果)의 법리를 연상케도 한다. 가령 부정한 동기와 부당한 방법으로 얻어낸 증거는 증거능력을 갖지 못한다는 법리는, 정당하지 못한 동기와 방법을 독나무로 비유한다. 그리고 그 열매인 증거를 독과일로 비유한다.

그러나 나는 ‘역사 바로세우기’의 정책전환을 독나무의 독과일로 폄하하고 싶지 않다. 더러는 ‘독소’가 섞여 있을지라도 그 열매는, 이땅의 겨레가 얼마나 외쳐왔던 소망의 열매이던가. 그 열매 자체만큼은 결코 훼손하고 싶지 않다. ‘독소’가 섞였다면 ‘독소’를 씻어내고 민주와 정의의 자양으로 가꾸어가는 쪽이 오늘의 당위이다. ‘독소’를 씻어낸 그 열매의 씨앗으로 우리는 ‘독소’가 없는 새로운 역사의 나무를 길러내야만 한다.

특별검사제 수용해야

그러자면 마땅히 김영삼대통령의 ‘고해’가 선행돼야 한다. 왜, 무슨 동기와 이유로 갑작스러운 정책전환을 결심하게 됐는지, 허심탄회한 고백을 겨레 앞에 털어놓아야 한다. 교언영색을 거두고 대선자금의 내막도 스스로 밝혀야 한다. 그 형식과 시기는 당연히 대통령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나는 오로지 정치의 통과제의(通過祭儀)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물론 그 한번의 통과제의만으로 의혹과 착잡함의 ‘독소’가 말끔히 씻겨지지 않을 터이다. 더욱 무게를 갖는 것은 그 이후의 행태이다. 정의와 민주와 역사에 충성하는 실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국정운영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구태여 지적한다면 특별검사제의 수용과 아울러 ‘폭도’로 매도되었던 광주시민의 명예회복과 배상에도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아무개 죽이기’ 따위의 정략적 의혹에서도 스스로 해방되지 않으면 안된다. 정의와 민주와 역사를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을 탄압하고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작태에도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는 지극히 정당한 정책전환의 ‘액면’을 ‘실질’의 값어치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오늘의 불안은 바로 그 ‘액면’과 ‘실질’의 불일치에서 연유한다. ‘액면’과 ‘실질’이 일치한다면, 이땅의 거의 모든 겨레는 불안할 턱이 없다. 15년여를 외쳐대며 기다려온 열매에 왜 불안을 느낄 것인가. 불안을 느낀다면 그것은 역사에 반동하는 수구의 무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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